나도 할 수 있다고... 모든 군주를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는 명서! 명서는 난세에서 나왔다

15세기 말 이탈리아는 끊임없는 외부의 침입으로 혼란 그 자체였다. 여러 도시 국가들로 분열된 터라 반도는 통일되지 못했다. 주변의 프랑스나 독일이 통일된 국가 형태로 발전돼 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기에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o. 1469~1527)는 이탈리아가 어떻게 하면 통일과 안정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군주론’의 집필 배경이다.

 

강한 군주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전제 군주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탈리아의 안정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1인 독재의 강한 군주가 필요하다고 피력한 군주론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첫째, 군주의 외적 요건 =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 한다.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군사력을 장악하는 것. 당시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상실한 통치자들은 모두 군사력이 취약했었다. 따라서 군주는 강한 자신의 군대가 필수이기에 자신을 전사로 생각하고 행동해 군대를 직접 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 군주의 준칙 = 군주는 공인(公人)이다. 사적(私的)인 개인의 덕목은 갖출 필요가 없다. 군주의 자비는 우유부단한 정책 결정으로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기 때문인다. 대의(大義)를 위해 인색해야 하며 폭력도 사용해 외경(畏敬)의 대상이 돼야 한다.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기 어려우니 사랑따위는 버려야 한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는 변덕스런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군주는 나라를 위한다면 신의(信義)도 저버릴 줄 알아야 한다. 배신도 할 수 있다.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위엄을 동시에 갖추라는 것이다.

완벽한 선(善)을 추구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 파멸되기 마련이기에 군주는 사람들을 현실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 실제 경험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공화국이나 군주국에 대한 상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몰입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구원이 아닌 파멸로 치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가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군주의 편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충성을 다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하는 말이다. 막상 자신의 위험을 닥칠 때는 배신한다. 언제나 변덕스럽고 위선적인 그들의 말을 믿지 말고 군주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다른 대비를 항상 해놓아야 한다.

위대하고 고상한 정신을 통한 것이 아니라 돈으로 맺은 결속은 위기에 몰리면 언제든 깨진다. 두려움과 공포의 권력은 실패하지 않는다.

셋째, 군주에 대한 조언 = 국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부녀자의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무기력하거나 변덕스런 모습을 자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완전한 논쟁의 자유를 허용하면 안 된다. 소수의 조언자들에게만 귀를 기울여 중립도 피해야 한다. 소심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키는가

“권력과 국가의 문제는 도덕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한 배경에는 극도의 혼란한 국가 문제가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더듬어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발췌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 군주는 우호세력을 만들고 무력과 속임수로 정복하고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동시에 두려움을 주고 군대에게 복종과 존경을 받도록 하고 충성하지 않는 군인들은 모두 제거해 새 인물을 들이고 주변의 왕들과 동맹을 해 흔쾐히 도움을 주되 함부로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고 주변의 숙적은 모두 제거하고 오래된 제도는 새로 대체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마키아벨리는 아가토클레스의 일생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도 말한다. 아카토클레스는 전혀 행운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곤경과 위험을 헤치며 남의 도움 없이 높은 지위에 올랐으며 용맹하고 위험했던 행동들을 통해 공화국을 다스리게 됐다고.

그러나 시민들을 죽이고 친구들을 배반한 자비와 신앙심이 없는 행동을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권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그는 한 국가를 탈취한 정복자는 실행할 필요가 있는 모든 가해 행위들을 단번에 실행하고 매일 거듭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해 행위가 반복되지만 않으면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민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심함이나 잘못된 판단의 반복으로 인해 언제나 칼을 들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군주는 누구나 무자비하다는 것보다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인자함을 잘못 활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백성들을 한데 모으고 충성을 바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잔혹하다는 비난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도에 넘친 인자함을 베풀어 혼란한 상태가 지속되어 백성들이 약탈과 파괴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군주보다는 가혹한 통치의 군주가 더 자비롭다는 것이다.

도에 넘치는 인자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만 가혹한 통치는 특정한 개인들에게만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는 베르기릴우스가 디도의 입을 빌어 자신의 통치가 가혹했던 것에 대해 변명한 것을 인용한다.

신생 군주국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다른 어떤 군주보다 신생국의 군주가 잔인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불가피하다.

“내가 처한 어려운 현실과 이제 막 통치를 시작했던 상황이 나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고 내 영토의 모든 곳을 삼엄하게 경비하도록 만들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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