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수익자 부과원칙 모호한 부담금 다수
대한상의, ‘부담금 3대 평가기준’ 제시

[중앙뉴스= 이광재 기자] 경제계가 법정부담금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법정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과 관련해 국민과 기업에 부과하는 조세 외의 금전지급의무를 말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분석한 ‘법정부담금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법정부담금은 공익사업 추진, 정책목표 달성 등을 이유로 부과되고 있지만 국민과 기업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지워 민간 경제활동을 저해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며 “경제·사회 변화를 반영해 타당성이 떨어진 부담금은 폐지하고 과도한 부과요율은 조정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담금은 1961년 도입되기 시작해 경제개발기인 1980년대 큰 폭으로 증가해 현재 90개에 달한다. 2002년부터 부담금관리 기본법을 시행하여 무분별한 부담금 신·증설을 억제하고 부과·징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부담금 관리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다.

부담금 징수액 추이 (단위: 조원) (제공=대한상공회의소)
부담금 징수액 추이 (단위: 조원) (제공=대한상공회의소)

그러나 조세와 달리 부담금은 납부 저항과 국회의 통제를 적게 받는다는 점, 일반회계 대신 기금 또는 특별회계로 관리돼 정부부처의 사업비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정부가 제도개선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국민과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부담금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2년 7.4조원에서 2022년 22.4조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부담금 관리제도는 개별부담금의 존치 필요성을 3년마다 평가해 합리성이 낮은 부담금은 폐지하도록 하고 있으나 폐지된 부담금은 미미하며 2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부담금이 67개로 전체 부담금의 74%에 달한다.

이에 상의는 현행 부담금 관리제도가 부담금 통제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부담금 목적의 타당성, 부담금 부과의 적절성, 부담금 사용의 적합성 등 ‘부담금 3대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동 기준에 맞지 않는 부담금을 개선할 것을 주장했다.

첫 번째로 목적 타당성은 부담금이 부담금관리기본법상 개념과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원인자·수익자 부담원칙이 약화돼 특정 이해관계자가 아닌 사실상 일반국민에게 부과·징수되고 정책유도 기능도 없는 이른바 재정충당 목적의 조세성 부담금은 과감히 폐지하거나 또는 조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의는 목적 타당성이 부족한 대표적인 부담금으로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국제교류기여금, 출국납부금(외교부, 문체부), 광물 수입부과금 및 판매부과금, 재건축부담금 등을 들었다.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은 영화관을 입장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입장권 가액의 3%를 부담금으로 징수하는데 영화로 인해 수익을 보는 특정 이해관계자가 아닌 일반국민에게 부과되고 영화 관련 행위를 유도하는 기능은 찾을 수 없는 대신 영화 진흥사업의 재정충당에만 이용되고 있어 목적의 타당성을 찾기 힘들다.

외교부의 국제질병퇴치기금 재원 마련을 위한 출국납부금과 문체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 재원 마련을 위한 출국납부금 역시 질병유발 및 관광이라는 특정행위의 원인자가 아닌 공항 및 항만을 통해 출국하는 모든 일반국민에게 부과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두 번째로 부과 적절성은 부담금 부과요건 및 요율이 적합하게 설계됐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부담금은 국민에게 금전적 부담을 지우는 제도로 법령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나 많은 개별 부담금의 부과조건 및 요율은 법적 근거가 약한 행정규칙이나 조례 등에 위임돼 있다.

상의는 부과 적절성이 문제되는 경우를 2가지로 구분했다. 먼저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부담금으로 신용보증기금 출연금, 환경부 수계별 물이용부담금, 혼잡통행료, 지하수이용부담금 등을 지적했다. 이들 부담금은 부과조건 및 요율을 시행규칙, 고시 또는 지자체 조례에서 정하고 있다.

납부능력을 고려하지 않거나 원인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요율이 설정돼 있는 부담금으로 교통유발부담금, 혼잡통행료, 재건축부담금 등을 지적했다. 교통유발부담금은 도시교통정비지역내 연면적 1000㎡ 이상의 시설물에 부과되는데 시설물의 바닥면적에 단위부담금과 교통유발계수를 곱해 부과하고 있다.

단위부담금은 2014년 1㎡당 최대 400원에서 2020년 최대 1000원으로 지속 인상중이고 지자체 조례를 통해 이를 100%까지 상향할 수 있는데 서울시는 현재 최대 2천원을 적용하고 있다. 단위부담금이 계속 인상되는 데에는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지역별 기준도 달라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세 번째로 사용 적합성은 징수된 부담금이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에 사용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부담금이 징수 목적과 관련이 적은 곳에 사용되는 것은 ‘특별한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특정 이해관계인에 부과’하는 부담금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부담금 징수액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 계획된 사업이 아닌 여유자금 등에 적립해 다른 사업의 재원이 되게 하는 것은 원인·수익자 부담원칙에 의한 공공서비스 창출과 바람직한 행위를 유도하는 부담금의 정책유도 기능과도 맞지 않다.

상의는 사용 적합성이 부족한 부담금으로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카지노사업자 납부금, 지하수이용부담금, 국제교류기여금 등을 지적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2006년부터 요율이 전기요금의 3.7%인데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부담금 징수액도 계속 늘어나 사업비를 크게 상회하는 금액이 징수되고 있다. 실제로 전력산업기반기금 관련 사업비용과 운영비용을 제외한 여유재원이 2009년 2552억원에서 2021년 기준 3조777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해당 여유재원은 정부가 기금 등의 여유재원을 통합관리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되고 있다.

이수원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법정부담금은 국민에게 금전적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조세와 동일하나 조세법률주의 같은 엄격한 통제 없이 부과·징수가 이뤄지고 있어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면서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도는 저성장 구조에서 부담금이 민간 경제활동을 저해하지 않도록 법정부담금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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