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세계 경제는 다시 빨간불이 켜지며 ‘3高 1低’ 먹구름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진정되고 있던 국제유가의 급등이다. 서부텍사스유(WTI) 기준 국제 유가는 9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원유인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도 배럴당 90달러 선을 돌파했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인 북해산 브렌트유도 90달러대에 진입했다. 3개월 전 70달러 수준에서 무려 20%나 올라 연중 최고치다. 미국 월가 일각에선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내놓고 있다.

이번 유가 급등은 세계 2, 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때문이다. 이제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기는 추세 전환을 하기도 전에 다시 고꾸라질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Muhammad bin Salman)’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지난 9월 6일(현지 시각) 전화 통화를 하고 원유 감산을 비롯한 양국 간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알렉산더 노박(Alexander Novak)’ 러시아 부총리는 정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도 12월까지 하루 30만 배럴씩 자발적 감산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에너지부도 이보다 앞선 지난 9월 5일(현지 시각) 자국 국영 매체를 통해 밝힌 성명에서 “7월부터 시작한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축을 올해 12월까지 연장한다.”라고 발표했다. 두 산유국의 감산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시티(Neom City)’ 건설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에 부을 돈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전비가 필요하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인 중국의 원유 소비가 디플레이션 우려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석유 전쟁’이라 불렸던 가격 할인 경쟁을 벌이며 국제 유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두 나라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와 전쟁 발발 이후 원유 감산에 대해 ‘찰떡궁합’을 이어가며 거의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 우려를 재점화할 수 있는 이번 조치로 백악관과의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대선을 14개월 남겨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새로운 타격”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에너지원이자 동력원인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 휘발유·전기 등 에너지 가격은 물론 식품·서비스료 등 생활 전반의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를 잡으려 긴축과 금리 인상에 나서면 내수와 수출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줘 경제침체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화폐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긴축과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전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고유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는 소식에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고 금리와 환율이 요동친 이유다.

문제는 수출과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물가가 걱정이다. 다소 안정세를 찾고 있던 물가가 다시 오름세를 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가는 물가를 끌어올리는 직접 요인이다.

유가가 오르면 각국 중앙은행이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간신히 고삐를 잡은 물가가 다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요금과 전기요금은 이미 올랐고 추석을 앞두고 각종 식품과 과일, 채소가격마저 들썩이는 마당에 설상가상의 악재를 맞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월 소비자물가가 폭염과 폭우에 전년 동기 대비 3.4%나 올랐는데 추석까지 다가오고 있다. 과일 가격은 이미 폭등세다. 사과(홍로) 도매가격은 10㎏에 8만 원도 훌쩍 넘어 1년 전보다 60% 가까이 올랐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경제가 또다시 시련을 맞게 된 데 있다. 경기 부진은 계속되고 있고 물가 오름세는 심상치 않은데 유가 급등이란 초대형 악재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실물경기는 지난 7월 생산(-0.7%), 소비(-3.2%), 투자(-8.9%) 3대 지표 모두가 일제히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가 나타날 정도로 좋지 않다. 게다가 11개월째 감소세인 수출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15개월 연속 적자를 내다 지난 6월 이후 석 달째 흑자를 내고 있지만, 속사정은 좋지 않다. 경상수지가 3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감소한 결과 생긴 ‘불황형 흑자’였기 때문이다. 결국 유가 하락에 따른 에너지 수입 감소가 무역수지 개선의 일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수출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가 급등에 따른 수입 증가는 무역적자로 이어져 경상수지마저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을 연장키로 한 이유가 중국 경기의 침체 가능성과 수요 감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건설업체 연쇄 부도 위기에 중국 정부는 유동성을 공급하며 내수 진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하고 추가 부양책을 펼 여력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여전히 대중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의 충격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9월 7일 발표한 ‘9월 경제동향’을 통해 국제유가 상승과 중국 경기 불안 등을 언급하면서 이는 한국 경제의 부진 완화를 제약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KDI가 지난 ‘7월 경제동향’에선 “경기 저점을 지나가고 있다”라고 판단했고, 이어진 ‘8월 경제동향’에선 “경제 부진이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모습”이라며 회복세를 부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진 양상이다.

이번 ‘9월 경제동향’ 평가에선 ‘경기 부진 완화’라는 표현이 빠지고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새로 나왔다. 지난 두 달 연속 경기 회복 흐름을 부각해온 평가에서 한발 물러나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강조됐다는 것이다. 고물가와 경기 불안 조짐이 동반 가시화하는 평가여서 향후 우리 경제에 대한 전망이 매우 우려스럽다. 따라서 우리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대내외적 악(惡) 변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단기적으로 재정·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했다. 한국을 방문한 IMF 연례협의단이 지난 9월 6일 발표한 ‘2023년 연례협의 결과’에서 “팬데믹 기간 재정이 매우 확장적이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수준이 상승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정부 부채 증가를 억제하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지속적인 대응을 위해 현재의 긴축적 재정·통화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정부 부채의 증가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을 위한 종합적인 비상 경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의 ‘3고(高) 1저(低)’가 고착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물가 안정과 수출 회복을 전제로 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전면 재검토하고 비상한 선제 대응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미 물거너 간 막연한‘상저하고(上低下高)’라는 희망 고문만 고집할 게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하고 발 빠른 대응책을 강구하는 게 정확한 진단이자 따라야할 수순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5일 발표한 ‘2023년 2/4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023년 2/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6% 성장에 그쳤다. 이러다가 중국 경제 부진에 따른 하방 압력까지 겹치면서 올해 1.4% 성장률 달성조차 힘들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든다.

이렇듯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지표는 진한 먹구름으로 갑자기 돌변한 상황이다. 더구나 물가를 잡자고 함부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고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재정을 풀기도 힘들다. 정부는 작금의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무겁고 냉철하고 엄혹하게 인식·통찰하고 24시간 잠들지 않고 국내외 경제 상황 전반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통제·관리하고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로 작동하는‘경제 워룸(War room)’을 설치하여 즉각 가동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수립하여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 사령탑(Control tower)의 상황 인식이 안일하다거나 마음이 콩밭에 있다거나 하는 비판을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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