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충격이 지난 10월 4일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주식·채권·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세를 보이는 등 금융 불안이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실물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도록 당국의 선제적 금융 위험 관리가 화급한 시점이다.

글로벌 채권시장이 지표로 삼는 벤치마크인 미국의 10년물(만기) 국채금리가 3일(현지 시각) 연 4.801%를 기록하며 3개월 사이에 1%포인트 가까이 올라 2007년 8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30년물 국채금리는 4.936%로 5% 돌파를 목전에 뒀다. 미국 재무부가 3분기 국채를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70억 달러(약 1,370조 원)어치를 발행하기로 한 영향이 크다.

수요보다 국채 공급이 증가하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지만 금리는 상승한다. 미국 국채가 전 세계 달러를 쓸어담는 블랙홀이 되면서 글로벌 자금난을 가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시장은 지난 9월 4일‘검은 수요일’을 맞았다. 코스피는 전전 거래일보다 2.41%인 59.38이나 하락한 2,405.69로 장을 마쳤다. 지난 3월 21일(2388.35) 이후 가장 낮았다. 코스닥도 4.0%인 33.62 폭락하며 807.4로 장을 마감했다. 두 시장의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62조 7,923억 원 증발했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쌍끌이 팔자’ 영향이 컸다. 개인투자자들이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국고채 10년물은 전 거래일 대비 0.321%포인트 오른 4.351%로 장을 마치며 연저점 대비 1%포인트 이상 폭등했다. 원·달러 환율도 14.2원 급등한 1,363.5원으로 마감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주식·채권·원화가 한꺼번에 급락세를 보인 것은 지난 추석 연휴 동안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한 탓에 연유한다.

고유가 지속과 미국 고용 시장 호조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 주요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는 피벗(Pivot │ 통화정책 전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져 연준(Fed)의 고금리 정책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자 불안심리가 일시에 분출된 결과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긴축 발작(Taper tantrum)’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월가에서는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1.5%포인트 높은 7%까지 오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기준금리(5.25∼5.50%)보다 한국의 기준금리(3.5%)는 상단 기준 2.0%나 낮아 금리 인상 압박을 받는 한국으로선 공포스러운 전망이다. 한편 시장 컨센서스(Consensus │ 총의)나 미국 연준(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연말 최종금리를 5.5∼5.75%로 예측했다.

하지만 ‘월가의 황제’라 불리는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의 CEO(최고경영자)인 제이미 다이먼(James Jamie Dimon) 회장이 미국 기준금리가 연 7%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던지면서 “연 7% 금리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라는 경고를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다이먼 회장은 지난 10월 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내가 작년에 5%대 금리가 올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도 사람들이 ‘정말로 그리 되겠느냐’고 물었다.”라며 “(7% 금리는)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다이먼 회장은 “금리는 경기 상황과 함께 봐야 한다.”라고 말하며, “경제적으로 최악의 경우는 저성장과 고금리를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고물가 속 경기침체)”이라면서 “경기가 호황일 때도 금리는 오를 수 있는데, 이는 자금 확보 경쟁이 늘어난 결과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는 다르다.”라고 말한 데도 주목해야 한다.

수출 부진에 부채 문제와 경기 둔화가 심화하는 우리 경제에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7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5% 감소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81.7%로 비교 가능한 26개국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5년간 민간부채 비율 증가 폭은 42.8%포인트로 26개국 중 가장 높다. 이 중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0%에서 지난해 108.1%로 증가 폭 1위다. 게다가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1,862조 8,000억 원에 달하고, 기업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908조 9,000억 원, 전체 기업 신용(대출 + 외상거래)은 2,705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최근 가계 대출 원리금 부담 때문에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사람이 300만 명에 달한다는 충격적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기업부채 비율도 2017년 147.0%에서 2022년 173.6%로 뛰었다. 무더기 도산이 이어진 1998년 IMF 외환위기(108.6%) 때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99.6%) 당시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공포에 이날 외국인은 주식만 2,57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는 데다 강달러가 지속하면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시 이탈이 본격화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들은 9월 한 달 동안 거래소에서 1조 원, 코스닥에서 1조 2,000억 원 등 총 2조 2,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실물 경제가 최악인 상황에서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의 악순환이 지속하면 한국경제는 뿌리째 흔들릴 위험이 크다. 정부는 1998년 IMF 외환위기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최악의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철저히 대비해야만 한다.

정부가 올해 59조 원의 세수 부족을 공식화하고 대규모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등을 동원해 이를 메우겠다고 했는데 외환 당국이 지난 2분기 환율 방어를 위해 쓴 외화만도 무려 60억 달러(약 8조 원)나 된다. 외평기금은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와 외화를 기금 형태로 쌓아둔 것으로, 지난해 말 기준 269조 4,000억 원에 이른다. 작년부터 치솟은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외환 당국이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이면서 상당 규모의 원화가 쌓였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환율이 언제 다시 요동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예비비 성격의 외평기금을 손쉽게 꺼내 쓰는 것은 신중해야만 한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외채 비율 등 대외건전성 지표를 재점검하고, 59조 원의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에서 돌려쓰기로 한 20조 원도 가급적이면 신속히 원위치시켜야 한다.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선 세수 기반을 확충하고 재정 지출 누수를 막는 정공법이 우선이다. 이런 근본 대책 없이 ‘환율 비상금’인 외평기금에 손대는 미봉책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가팔라진 물가 상승세다. 통계청이 9월 5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의하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3.4%로 뛰며 3개월 만에 3%대로 다시 올라섰다. 이렇듯 널뛰는 물가상승은 유가 인상과 직결된 공산이 크다. 월급만 빼고 모든 것이 오르고 있다. 우윳값과 대중교통 요금이 올랐고, 맥주류 출고 가격도 다음 주부터 7%가량 인상된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Group)는 올해 안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결정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어 국제유가 오름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고물가·저성장·환율 불안의 ‘트릴레마(Trilemma │ 삼중 딜레마)’에 빠져 꼼짝을 못하고 있다.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 침체가 깊어진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환율·물가 오름세를 감안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당분간 고공행진이 불가피하다. 고금리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대책이 시급하다. 올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은 7조 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 2분기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도 743조 9,000억 원으로 지난 1분기보다 9%인 6조 4,000억 원이나 더 증가했다.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 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 관리에 나서야 한다. 물가가 오르면 부담을 느낀 가계는 지갑을 닫고, 이러한 소비 부진은 민간 기업의 생산과 투자 감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물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생산(-0.7%), 소비(-3.2%), 투자(-8.9%) 3대 지표가 한꺼번에 줄어드는 이른바 ‘트리플 감소(Triple minus │ 3低)’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빚 폭탄의 뇌관을 이대로 방치하고 있는 한 한국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경기 회복의 길은 요원하고 금융 시스템마저 망가질 수 있다. 과도한 부채로 가계 및 기업의 소비·투자 여력이 소진된 가운데 불황 대응 능력마저 상실해버린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빚의 덫’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부채 위험을 꼼꼼히 점검한 뒤 부실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선제 대응해 가야 한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 기업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구분하는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 좀비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우량 기업은 유동성 지원 등을 통해 흑자도산도 막아야 한다.

가계부채도 재기 가능한 차주는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등 채무 조정 및 신용 회복 프로그램을 빈틈없이 가동하되 한계 차주는 사회안전망을 활용해 구제하는 등 핀셋형 맞춤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을 더 늦춘다면 지난 30년간 제자리걸음에 머물렀던 일본과 최근 ‘부채의 늪’에 빠지고 있는 중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음도 유념해야만 한다. 금융·통화 당국은 자본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일부 취약 고리가 금융권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 대응해야 한다.

정부는 고금리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기업 구조 조정, 규제 혁파 등을 통해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최후의 방어선인 수출 확대를 위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시장 다변화 등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서민과 자영업자는 ‘코로나 시국’보다 더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비상한 각오로 민생에 최우선을 두고 국정을 운영해야만 한다. 그것이 국가와 정부의 책무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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