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운다

[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시인 최한나
시인 최한나

 

의자가 운다

최한나

 

문득 당신이 의자였다는 사실을

나도 의자가 되고 보니 알게 되었다

까끌까끌한 수염이 돋아난 의자

술 냄새 나던 앉은 당신에 앉곤 했었다

우는 의자를 불러

사탕 한 알 입에 넣어주던 쉰내 나던 의자

너무 커버린 의자를

아직도 앉혀보고 싶다는 듯

뼈 마디마다 고여 있는 눈물을 툭툭 털어내곤 한다

 

오늘, 울고 있는 의자를 버리고 싶다

세상에 어느 불효도 앉히지 못할 낡아빠진 의자

자꾸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한다

노을을 덮고 때론

세상 모르고 낮잠에 들기도 한다

자꾸만 어느 의자로 가서 앉으려고 한다

 

앉아있는 의자는 누구든 앉힐 수 있고

앉은 의자만이 누구든 앉힐 수 있다

식어버린 무릎을 펴고 방안을 서성거리는 의자를

가끔 갖다 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등을 돌리고 어느 의자에서 아직

일어서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리 오렴, 어린 아이를 부르는 의자

너도 이곳에 앉아

훗날의 불효를 배워라,

두 팔 벌려 부르는 의자

내가 의자에 앉아 배운 것은 불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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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아보면 꽤 멀리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것들이 보이니 인생의 철이 드나봅니다. 

그리움이 독한 타투처럼 새겨진 둥근 달, 나의 아버지! 

어린 계집아이 아장걸음에 넘어져 앙앙거려도 마냥 앉혀주고 싶어하던 당신이라는 의자가 오늘 문득 다가오는 듯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무거워진 나, 이제 앉아서 응석 부릴 수도 없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라서요. 창문을 더 넓게 달았어요. 가끔씩 이 창을 열어보려 해요. 뜨락에 기다리는 그 의자에 붉은 단풍잎 한 장 되어 살포시 앉아 보겠어요.

나, 어느 날엔가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햇살 웃음으로 따스한 무릎 내어주실 나의 아버지, 점점 멀어지나요? 아니 점점 짧아지는 거지요. 이제는 내가 의자가 되어 당신의 상처와 눈물을 보듬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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