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인류의 아이들(Children of Men)이 한 명도 태어나지 않게 된 2027년을 그린 멕시코 영화 감독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이 2006년에 제작한 ‘칠드런 오브 맨’은 아기가 세상에 새로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어두운 미래를 배경으로 말 그대로 출산율이 0명이 돼버린 세상의 이야기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약 20년 동안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아 부채 의식을 가질 미래 후손이 없기에 되는 대로 뺏고 방화하며 파괴한다.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임신 기능을 상실한 종말의 시대, 비일비재해진 폭동과 테러에 대부분 국가가 무정부 상태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군대가 살아남은 국가 영국에는 불법 이민자들이 넘쳐난다. 그 안에서 이민자를 차별하고, 철저하게 계급을 나누려는 모습이 자행된다. 그들이 이민자를 차별하는 모습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정상적 범주를 넘어서 착취가 난무하고 폭력의 극치를 보인다. 국가의 몰락을 의미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외국인 여성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라고 읊어대는 장면이 하나의 ‘밈(Meme │ 문화적 유전자)’처럼 하루 만에 조회 수가 43만 회를 넘겨 가면서 인터넷을 떠돌며 달구고 있다. 영상 속 여성은 지난달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0부에서 ‘조앤 윌리엄스(Joanne Williams)’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 15~49세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0.78명’이라 한 말을 듣고 보인 놀란 반응에 이어서 이른바 ‘망한 한국’ 시리즈가 또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구독자 2,12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에서 저출산 위기를 겪는 국가로 한국을 조명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과학, 의학, 미래 등을 주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올리는 독일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는 지난 10월 4일 ‘한국은 왜 망해가나(Why Korea is Dying Out)’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채널 측은 한국이 ‘노인의 나라’가 될 거라며, 강력 경고 메시지를 남겼는데 공개한 13분짜리 영상은 태극기가 흘러내리는 이미지를 섬네일(Thumbnail │ 작은 크기의 견본 이미지)로 써 관심을 모았다. ‘망해간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며 지적한 것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저출생 문제였는데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250만 회를 돌파했고, 댓글은 2만개 가까이 달렸다.

쿠르츠게작트는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한 사실을 짚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현재 젊은 인구가 100명이라면 2100년에는 그 숫자가 6명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라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100년 안에 한국의 청년 94%가 줄어든다. 노인의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2100년 한국의 인구수는 2,400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는 1950년대로 돌아간 수준”이라고도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고령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1950년 한국의 중위연령이 18세(만19세)였다면, 2023년에는 45세, 2100년에는 59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위연령은 한 나라의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을 뜻한다. 중위연령이 높을수록 노인 인구가 많다는 의미다.

노동력을 공급하는 생산연령인구(15~64살)가 줄고 고령화가 되면 사회가 감당할 의료비와 빈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점, 혁신이 어려워진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중국’이 바로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중위연령은 한 나라의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을 뜻하는데 중위연령이 높을수록 노인 인구가 많다는 의미다.

영상은 노동력을 공급하는 생산연령인구(15~64살)가 줄고 고령화가 되면 사회가 감당할 의료비와 혁신이 어려워진다는 점 등도 지적했다. 영상은 “고령화 사회에선 선출 정부가 노인 인구의 이익을 대표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사고하는 사회, 혁신보단 기존의 것을 유지하는 걸 선호하는 사회로 이어진다.”라며 “기후변화 등의 미래 문제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투자와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그게 어려워진다.”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쿠르츠게작트는 이들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성평등, 보육비 지원 등 부모에 대한 재정적 혜택, 안정적인 집값 등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7월 출생아 수가 7월 기준 처음으로 2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지난 9월 27일 발표한 ‘2023년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7월 출생아 수는 1년 전 2만 475명보다 6.7%인 1,373명이나 줄어든 1만 9,102명에 불과했다. 7월 기준으로 출생아 수가 2만 명을 밑돈 것은 월간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이후 처음이다. 출생아 수 감소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7월 사망자 수(2만 8,239명)가 출생아 수를 웃돌면서 인구는 2019년 11월부터 45개월 연속 자연 감소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0명에 그쳐 지난해 2분기 0.75명보다 0.05명이나 줄어 2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저인 0.70명을 기록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통계청이 분기별 합계출산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전 2분기 통틀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인 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경까지 추락했다.

2006년 ‘유엔(UN) 인구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지속하면 한국이 지구 위에서 사라지는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 경고하며, 당시 ‘코리아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 명예교수가 지난 5월 17일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그 대가로 이를 물려줄 다음 세대가 없어졌다.”라며 “이대로라면 2750년 한국이라는 나라는 소멸(Extinction)할 수도 있다.”라고 다시 한번 섬뜩한 경고를 했다. 저출산의 원인은 질 좋은 일자리 부족, 높은 주택 가격, 과도한 사교육비 등 복잡한 사회구조적 요인이 얽혀 있으므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아이 낳으면 돈 준다.’라는 식의 출산 장려책만으로는 저출산의 난제를 풀기 어렵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인구 문제 해결에 약 28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추락했다. 처참한 합계출산율에 정부가 지난 3월 저출산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과거의 현금 지원식·나열식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택과 집중’으로 실효성을 높였다지만 파격적인 대책을 찾기 힘들다. 그동안 아이를 낳고 싶은 조건, 어머니가 되고 싶은 생태계를 만드는 데 세금을 쓰지 못한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초저출산화의 심각성과 국민 체감도를 감안하면 정책 강도가 여전히 약하고 미흡하다.

하지만 올해 태어난 아이는 0~5세 영유아기에 정부에서 최소 2,700만 원, 최대 4,297만 2,000원을 지원받는다는 육아정책연구소(KICCE)의 ‘내 아이의 육아비용 얼마나 지원받았나’란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 상황별로 받는 보육료·육아학비, 가정양육수당, 아동수당, 부모급여(영아수당) 등 정부 지원 수당을 합한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1.30명이었던 2012년 출생아에게 최소 수급액 780만 원, 최대 2,508만 원을 지원한 것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다 각 지방자치단체 지원액까지 합하면 지원금이 5,000만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4년 ‘저출산 극복’ 예산이 17조 5,900억 원이라고 한다. 올해 14조 원에서 25% 이상 늘린 것이다. 부모급여를 만 0세 아동은 월 7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만 1세 아동은 월 3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고,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으로 아파트 특별공급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 정도 대책으로 세계 최악의 초저출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라가 폭망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인 데도 이렇다 할 획기적 대책 없이 방관과 방기로 허송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4만 9,000명이었다. 내년도‘저출산 극복’ 예산 17조 5,900억 원을 내년에도 지난해 정도의 출생아 수로 추산하면 출생아 수 1인당 7,064만 원 상당의 예산이다. 이러한 7,064만 원가량의 금액 전액을 출생 시점에서 아예 일시불로 한꺼번에 지급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출산 장려 방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출산지원금에 초점이 맞춰진 지금의 저출산 해법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출산을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까지 작용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게 하는 것 못지않게 아이를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는 추세에 맞춰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보육 시스템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미덕으로 자리 잡은 결혼 생활을 보다 더 공정한 시선과 잣대로 살펴보고, 여성의 능력을 남성 편향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수행하고 그것에서 얻는 높은 성취감이 출산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심도 있는 정책을 구상하여 육아 독박, 경력단절, 가사노동 편중 등으로부터 자유롭고, 영유아에서 유치원,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자녀를 안심하고 양육하고 기를 수 있도록 아이 기르기 좋은 판이 짜인다면,

자식은 부모가 낳을지라도, 부모의 자녀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식과 제도가 조기 안착한다면, 자녀를 기르는 동안 어머니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꿈과 희망과 능력이 억눌리지 않도록 사회시스템이 개혁된다면 아이를 낳은 엄마가 그것으로 행복한 것은 물론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개선된다면 세계 최고의 ‘난임 국가’로의 낙인이 걷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국가소멸 위기’의 ‘인구 대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발상을 바꿔 정책 대전환에 나서야 할 때다.

직장 보육 시설이나 돌봄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대기업 종사자는 전체 근로자의 20%도 안 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지속적인 예산·세제 지원을 통해 국공립 보육 시설과 초등학교 돌봄 서비스를 확충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육아휴직제도 활성화 등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직장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내년부터 생후 18개월 이내 자녀를 둔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을 내면 첫 6개월 동안 부부 합산 최대 3,900만 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 정책이 시행된다.

하지만 정작 직장인 절반 가까이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9일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진행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5.5%가 ‘그렇지 않은 편이다’라고 답했고, 20.0%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22.4%가 ‘그렇지 않은 편이다’라고 답했고, 17.6%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변했다.

일터에서 여성들이 누구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확실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손자·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30만 원가량의 돌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들은 일선 현장의 보육 종사자 처우 개선과 함께 촘촘한 ‘양육 친화적’ 정책을 만들어 조속히 정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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