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고금리 장기화로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갈수록 더하고 있는 가운데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전(全) 금융권의 가계 대출은 주댁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6개월 연속 증가했으며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끌어다 쓴 ‘다중채무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 대출 차주 수는 한국은행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약 100만 대출자 패널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모두 1,978만 명에 달하고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 7,000억 원에 이르고,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332만 원에 이른다. 전체 가계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2분기 말 39.9%로 추산됐다. 연 소득의 39.9%를 빚 갚는 데 쓰는 셈이다.

문제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다중채무자’는 1분기 말보다 2만 명이 증가한 448만 명에 달해 전체 가계 대출자 1,978만 명의 22.6%에 이른다. 넷 중 한 명은 돌려막기로 연명하고 있는 셈으로 지난해 4분기부터 역대 최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572조 4,000억 원으로 1인당 평균 대출 잔액도 1억 2,785만 원에 이른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DSR은 61.5%로 소득의 61.5%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보통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등은 DSR이 70% 안팎이면 최소 생계비 정도를 제외한 소득 대부분을 원리금 갚는데 쓰는 상황으로 간주한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취약 차주’들의 경우 상환 부담은 더 컸다. 전체 가계 대출자 가운데 ‘취약 차주’ 수 비율은 올해 2분기 6.4%로 2020년 4분기 6.4% 이후 2년 반 만에 같은 비율로 가장 커졌다. ‘취약 차주’들의 올해 2분기 말 기준 DSR은 평균 67.1%로 3개월 새 0.2%포인트나 올라 2013년 4분기 67.4% 이후 9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가계 대출자의 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과 같거나 소득보다 많은 이른바 DSR이 100% 이상인 차주도 전체의 8.6%인 171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DSR이 70% 이상에서 100% 미만인 대출자는 6.3%인 124만 명인데 이들까지 합하면 DSR 70% 이상 대출자 수는 14.9%인 295만 명까지 늘어난다. 대출 잔액 기준으로는 DSR 70% 이상인 가계대출의 비중이 40.8%(70∼100% 미만 12.2% + 100% 이상 28.6%)에 달한다.

이렇듯 거의 30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원리금 상환을 하느라 생계 곤란을 겪고 있다. 리드코프 등 국내 주요 3개 대부 업체의 개인 신용대출 중 20대 이하, 60대 이상 차주의 상반기 말 연체율이 각각 12.5%, 5.4%에 이르렀다. ‘빚 수렁’에 빠진 청년과 노인들의 상환 능력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연체율마저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중채무자’의 연체율은 2분기 말 1.4%로 1분기보다 0.1%포인트나 상승했다. 2020년 1분기 1.4% 이후 3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취약 차주’의 가계대출은 은행보다 비은행금융기관에 집중돼 있는데, ‘취약 차주’가 2020년 이후 받은 가계대출 연체율이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빚을 내 근근이 버텨온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만성적인 청년 취업난으로 소득이 감소하거나 부동산·주식·코인 가격 폭등에 편승해 ‘영끌’과 ‘빚투’에 나섰다가 물린 청년들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17일 통계청과 국회에 따르면 지난 9월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8만 9,000명이 줄어들면서 11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졌다. 고용률도 15세 이상 전체 고용률은 63.2%에 달했지만, 청년층 고용률은 46.5%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의원에게 제출한 ‘2022년 6월∼2023년 7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및 6대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NH투자·키움·메리츠) 취급액 현황’에 따르면 2030 세대가 지난 한 해 동안 새롭게 낸 빚 규모는 134조 원에 육박했다. 연체도 급속히 늘어 지난해 3,524억 원에서 올해 7월 기준 4,940억 원으로 6개월 새 1,416억 원이나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부 업체 3개 사(리드코프·태강대부·에이원대부캐피탈)가 내준 개인 신용대출 중 청년층의 연체율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2.5%에 달해 2019년 말 5.1%에서 4년 연속 상승한 수치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도 홀로 10%를 넘기는 등 가장 높았다. 대부 업체에 손을 벌린 20대 청년 10명 중 1명 이상은 경제활동 초기부터 ‘연체자’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부터 글로벌 고물가와 고금리에 경기 침체까지 겹쳤다. 국제 유가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하면서 지난 4월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10월 1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9월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0.16%포인트 뛰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4.17∼7.14%로 올랐다.

지난 10월 16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116억 9,29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감소했다. 고환율 약발이 수출 성적표에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는데도 수출 성적이 부진한 건 복잡한 글로벌 경제 상황과 한국의 원자재·중간재 수입 구조가 맞물려서다. 수출 성적이 부진하면서 경기 침체의 그림자도 더 짙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10일 발표한‘2023년 10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올해 한국 성장률은 7월 전망과 같은 1.4%를 유지하였으나 내년 성장률은 2.4%에서 2.2%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게다가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도 악재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특성상 유가 상승은 유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석유를 사용하는 제품, 운송 부문까지 비용 상승을 초래해 달러의 유출과 비용의 증대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다중채무자'들이 대출이자 부담 등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무더기로 도산하는 경우 금융권의 연쇄 부실과 함께 자칫 금융 시스템 위기를 촉발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계속 연장돼오던 대출 만기,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금융권 자율 규제로 전환되면서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경제 위기는 금융 위기에서 시작되고, 금융 위기는 대개 부실 대출에서 비롯됐음을 경제사적 경험을 통해 기(旣)학습한 바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은 고금리 시기에 ‘다중채무자’를 방치하면 언제 부실 채권 폭탄이 터져 금융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지 모른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취약계층 중심으로 가계부채 관련 위험 고리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채무 재조정 등 연착륙 프로그램 정비를 포함한 실효적 선제적 조처에 나서야 한다.

빚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에 더욱이 돌려막기조차도 힘든 ‘다중채무자’가 448만 명에 이른 상황에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일순간에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서 신(新) 중동전쟁 발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고물가·고금리의 장기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다중채무자’들이 몰려 있는 저축은행·새마을금고 등의 부실이 금융권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촘촘하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과잉 대출을 걸러내되, 성실한 대출자에게는 숨통을 틔워주고 빚만 늘어나는 ‘취약 차주’는 사회안전망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다중채무자’들의 채무 상환 능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지속적 파악으로 이들이 감내할 수 있는 부채 수준을 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금융 위기 1차 방어막인 은행도 자본금을 확충하고 미리 충당금을 더 쌓는 등 자산 건전성 관리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를 구축하되 금융 비용 완화 조치도 병행해 ‘다중채무자’들이 연착륙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9월 20일 하반기 정책 서민금융 공급 규모를 기존 10조 원에서 1조 원 이상 증액하겠다고 했으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금융 취약계층의 상환 부담을 덜어주고 자활 능력을 키워주는 촘촘한 지원 대책이 화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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