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책임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에게 “인간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행위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조상들의 노예 소유에 대해 그들의 후손인 현대의 미국인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런 책임의 문제와 관련해서 샌델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라는 두 입장을 비교한다. 자유주의에 따르면 도덕적 행위자인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며 기본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목적을 선택할 수 있다. 즉 관습이나 전통 또는 물려받은 지위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우리를 강제하는 도덕적 의무를 정할 수 있다.

조정현 컬럼니스트
조정현 컬럼니스트

이런 입장에는 집단적 책임의식이라는 사고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의 관심은 오직 ‘개인’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인간으로서의 ‘자연적 의무’와 개인들간의 합의에서 발생하는 ‘자발적 의무’만을 정당한 의무로 규정한다.

반면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은 제3의 의무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연대의 의무’다. 개인은 자산의 자발적 선택에 대해서만 도덕적·법적 책임을 진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샌델은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으며 때문에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시민으로서 충직과 책임이라는 도덕적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연대의 의무란 인간 존재의 이러한 측면과 결합돼 있다.

공동체주의는 인간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정하지 않은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샌델은 강조한다. 샌델은 이러한 인간을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로 부른다. 무릇 국가의 수반이든 정치인이든 법조인이든 가장 중요한 실용적 덕목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는 가족, 국가, 민족의 구성원이자 그 역사를 떠안은 사람,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충직과 책임을 떠안은 자아다. 이러한 정체성은 소속감에는 책임감이 뒤따른다는 것을 집단적 책임의식을 인정할 때에만 인간은 한 국가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서사적 존재

샌델은 인간을 ‘서사적 존재’로 규정하면서 자발적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비판한다. 인간이 서사적 존재라면 그래서 항상 집단의 이야기 속에 연관되어서 해석되는 존재라면 인간에게 자유롭고 자발적인 선택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자유롭고 자발적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의 도덕적 책임이란 성립될 수 있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권력자의 잘못은 항상 어찌하란 말인가?

서사적 존재로서의 공동체주의적 인간관은 연대의 의무를 설명해줄 수 있지만 자율적 선택을 경시함으로써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약화시킨다. 반면에 자율적 존재로서의 자유주의적 인간관은 도덕적 주체로서의 의식을 강화시키지만 연대의 의무를 설명하기에는 무력하다.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 둘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데 사실 그것이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통합을 방해하는 것이 각각의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거대 양당또한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샌델은 집단의 연대감이 양심을 계발해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적 감수성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를 보면 의문스럽긴 하다.

오히려 연대감은 내집단의 구성원들을 편애하는 패거리 의식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해 양심을 무디게 만들고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적 감수성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샌델은 이런 말은 한다. “소속감에는 책임감도 따라온다. 내 나라의 과거를 현재로 끄집어내 도덕적 부채를 해결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 나라의 역사에 진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우리가 일본에게 항상 당당하게 일제 강점기 일본 군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일본 원전에 대한 오염수 문제 해결에 대한 문제점을 거칠게 항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문제들 즉, 세월호에 탔었던 사람들과 이태원 축제를 즐기려했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비극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가 져야할 의무인 것이다. 그러하지 아니 한다면 우리의 집단의식에는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이념이나 공산주의 이념이든 간에 국가 수반의 행정부, 국회, 법원, 종교 집단, 기업 또는 동네의 조그마한 조기축구동호회이든 간에 그리고 가족에도 모든 집단에는 책임을 지는 의무가 있어야 한다. 권력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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