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 칼럼= 전대열 대기자]오늘의 글쓰기를 ‘빈대 이야기’로 주제를 정해놓고 막상 펜을 들고 보니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좋은 제목 다 놔두고 하필이면 ‘빈대’를 주제로 삼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빈대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별로 좋은 느낌이 드는 벌레는 아니다. 빈대와 비슷한 인상을 주는 해충으로 이와 벼룩도 있다. 이는 더러운 옷과 이불에 기생하며 벼룩은 우상혁이도 울고 갈 높이뛰기에 일가견이 있어 때려잡기가 쉽지 않다. 6.25전쟁을 치르며 우리 민족은 이들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나도 초교시절에 미국에서 원조한 우유와 버터를 얻어먹은 기억이 있지만 그보다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DDT라는 하얀 가루약을 등과 바지사이에 폭풍처럼 쏟아 부은 기억이 새롭다. DDT는 지난번 큰 말썽을 빚었던 액상 소독제와 함께 인체에 결정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으로 판정되었지만 전쟁 당시에는 이와 벼룩의 번식을 막는 거의 유일한 소독제였다.

그 당시에도 빈대는 있었지만 이 벼룩에 비해서는 그다지 큰 피해를 입히진 않았던 듯싶다. 그런데 완전히 근절된 것으로 알려졌던 빈대가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퍼지고 있다는 보도다. 빈대는 이와 벼룩에 비해서 훨씬 크다. 주로 사람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고 사는데 한번 빨기 시작하면 10분 동안 계속한다니 참으로 섬뜩하다. 

나는 빈대와의 싸움을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매일 밤 심각하게 겪었다. 긴급조치9호 위반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던 ‘77년도에서 ’78년도에 이르는 연도에 구치소 9사에서 독방생활을 할 때다. 교도소 환경이 깨끗할 수는 없겠지만 밤중에 자다 말고 일어나 매일 밤 빈대와 싸웠다. 빈대는 훤한 대낮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깊이 잠든 오밤중에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 소리도 없이 사람의 피를 빤다. 물린 자리가 가렵기 시작하면 그 때서야 일어나 빈대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빈대의 신경반응은 매우 빠른 편으로 사람이 움직이면 즉각적으로 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교도소는 24시간 전기를 소등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빈대의 도망치는 모습이 볼 만하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새까맣게 벽을 타는데 매우 빠르다. 마치 독일 전차군단이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영화처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할까. 나는 벌떡 일어나 빠르게 빈대를 짓눌러 잡는다. 냄새도 고약하다. 

그 많은 빈대를 모두 잡을 수는 없지만 대여섯 마리는 피가 터지며 죽는다. 매일 밤 빈대 피로 얼룩진 벽지는 화가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역겹기 짝이 없다. 빈대 때문에 옥중 생활이 어렵다는 민원이 빗발친다. 교정당국도 이 문제로 매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이듬해 만기출소로 나오면서 이제야 빈대와의 전쟁을 끝마쳤다는 자유감을 만끽했다.

그 뒤 2년 후 이번에는 신군부쿠데타로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쓰고 다시 구속되었다. 이게 웬일이냐? 빈대구경을 할 수 없었다. 보통 소독약으로 빈대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교도소 측에서 특별단안을 내려 한 건물, 한 건물씩 비워 지붕까지 모두 비닐로 덮은 다음 독한 농약을 대량 살포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접근 금지를 시켜 빈대를 전멸시켰다고 한다. 

그 넓은 교도소가 농약천지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큰 사고는 없었다. 새 교도소 탄생이다. 요즘 빈대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지만 전국을 교도소처럼 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못된 빈대를 잡기 위해서 특별 제약을 할 수 있는 연구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지난 3년여 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에 시달렸지만 이제 거의 끝물이다. 독감도 유행하지만 그보다는 소 전염병이 극성이다. 흡혈모기가 전염을 시킨다는데 애꿎은 한우들만 살처분되고 있어 안타깝다. 사람과 동물을 아우르는 이들 병충해를 벗어나는 것은 정부와 국민이 예방에 더욱 힘을 쏟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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