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 칼럼= 전대열 대기자]서울 시내를 버스로 돌아다니는 것은 관광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볼 것이 참으로 많다. 바로 이웃 동네여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기에 1년쯤 가본 일이 없었는데 다시 찾은 그 동네가 상전벽해로 변한 사실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안 보이던 빌딩이 들어서고 다닥다닥 붙여지은 조그마한 집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높다란 아파트로 변해 있다. 얼마 전부터 KBS에서 ‘동네 한 바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천하장사 출신인 이만기가 진행을 맡아 제법 인기가 있다. 거기에서 보면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색적인 동네를 아주 잘 보여준다. 나는 서울거리를 다니다가 여러 해 동안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면서 이 현수막의 주인공은 왜 변함이 없을까, 거리가 변하고 동네도 모두 변했는데 어째서 현수막은 20년이 넘도록 그대로일까 속으로만 궁금증을 누르고 지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현수막은 실종된 따님의 행방을 찾는 부모의 눈물로 얼룩져 있다. ‘송혜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여자중학생인데 20년이 넘도록 찾을 수 없는 심인(尋人) 현수막 광고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기에 그 오랜 세월 행방이 묘연하단 말인가. 여중생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떤 부모인들 가만있겠는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기본이요, 신문광고나 광고문은 얼마나 돌렸을까? 

참으로 오랜 세월 나타나지 않는 따님을 목메어 불러보고 미친 듯이 찾아 나서지 않았겠는가. 20년이 넘었으면 이제는 중학생에서 중년여인으로 변해 있을 것인데 아직도 찾아 헤매는 부모님은 또 얼마나 노쇠했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해봤을 것이다. 행방불명의 경우에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범이라도 있었다면 또 모를까 도대체 아무 연락도 없이 20년 세월을 넘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여학생이 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사연이 저간에 있었는지를 알바는 아니지만 교통사고 등 모든 문제점을 다 내놓고 경찰에서도 꿍꿍이를 앓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님의 애타는 심정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송혜희를 생존자로 인정하고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쏟는다면 뭔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60년이 넘도록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이승만의 부활을 생각한다. 이승만은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12년 동안 대통령의 권좌를 누렸던 사람이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의 살길을 찾아 수많은 고통을 감내한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광복을 이룬 다음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김구와의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며 대통령에 뽑혔다. 그는 이미 노쇠한 나이로 대통령 자리를 왕좌(王座)로 생각하는 가부장(家父長)이었다. 그는 비판을 일삼는 야당과 언론을 적대시하며 1인 독재를 자행했다.

사사오입 개헌과 영구집권 개헌을 통하여 그의 마각은 드러났고 결국 3.15부정선거를 획책하여 국민의 선거권을 망가뜨렸다. 이에 저항하는 학생 시위대를 향하여 경찰의 총탄으로 186명을 사살하고 6천여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희생자의 절반은 학생이었으며 심지어 초등학생도 6명이나 된다. 

재아성에 쐐기를 박는 교수데모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는 대통령을 사임하고 오밤중에 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나 세상을 뜬 다음에야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승만은 요새 ‘건국전쟁’이라는 다큐영화로 새로운 영웅으로 되살아났다. 그를 망각했던 국민들이 새삼스럽게 그를 영웅화하는데 동조한다.

4.19혁명의 위대한 ‘민주주의 성취’는 입도 뻥긋 못하고 이승만 추켜세우기에 할로윈 놀이터처럼 모여든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승만보다 4.19혁명이 뒤쳐져 있어도 말하는 공직자 한 사람 없다. 실종된 4.19혁명을 찾습니다! 송혜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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