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객원 大記者

6.25때 겪은 일이지만 갑자기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동네를 휘저으며 분탕질을 친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부분 엊그제까지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들인데 인민군 세상이 되니까 그들이 날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란 노동자와 농민 등 압박받고 설움 받던 민중을 위한 정치체제라고 선전하여 못살던 사람들의 천국이라도 된 양 떠벌리고 다닐 때였다. 망둥어가 뛰니까 몽둥이도 뛰는 격으로 인민군보다 그들이 더 설쳤다.

‘완장 찬사람’은 그래서 조그마한 권세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풍자적으로 그런 표현이 간혹 쓰이고 있으니 그 후유증이 얼마나 컸을지 알만하다. 우리 사회도 일제로부터 광복을 이룬 다음 정부가 세워지면서 크고 작은 권세가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다. 울던 아기도 “저기 순사 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치던 칼 찬 순사들의 자리에는 민중의 지팡이 한국 경찰이 들어섰다. 군국주의 일제 하에서는 순사보다 한 단계 높았던 헌병이 민주주의 한국에서는 오직 군인들에게만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정부규모가 점점 커지며 권력과 이어지는 수많은 자리가 생겨났다. 이른바 관리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허가권이 주어져 사사건건 민간을 괴롭힌다. 아무리 작은 민원사항이라도 급행료가 건네져야 사무처리를 해준다. 인 허가에 들어가면 말할 나위도 없이 뇌물이 들어간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끈질긴 뇌물 관행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기관에서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이를 단속하고 잡아드리고 있지만 근절될 기미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사정기관에 있는 사람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권력을 이용한 부정비리에 연루되는 수가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인사 청문회 제도가 생긴 이후 총리, 장관 등 높은 관직에 나가는 사람들은 국회에서 검증을 하도록 되어있다. 이번에도 청문회가 열렸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깨끗하고 단정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위장전입은 필수조건이고 세금포탈, 논문표절, 병역면제 등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부정적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대해서 국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이미 예방백신을 하도 많이 맞은 터라 면역이 잘 되어 있어서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 어디 있나?”하는 정도다. 한마디로 그 정도쯤이야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여야는 서로 자기의 입장에서만 시비를 따지기 때문에 설득력도 약하다.

이런 판국에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벌어진다. 선거는 대통령선거가 제일 큰 관심을 갖게 되지만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느 선거를 막론하고 생사를 건 싸움이 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낙선한 후 자살한 사람도 있다. 그만큼 결과에 대한 충격이 크다. 공직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국가에 대한 확고한 사명감으로 뭉쳐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실속도 없는 자리를 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어 한번 해볼만한 직책이라고 하겠지만 지방의원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원래 무보수 명예직으로 못이 박혀있어 그 지역의 봉사자들이 나서야 하는 직책으로 그 성격이 규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회의비용 등 실비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도 지방의원들의 빗발 같은 요구에 의해서 지난번 임기부터는 정식으로 보수가 지급되고 있다. 의정비라는 이름으로 나가는데 그 액수를 본인들이 정하게 되어있다.

조례로 정하는데 자기가 받을 돈이니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지나치게 많은 의정비를 정했다고 해서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나 규탄하기도 하고, 정부차원에서도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정액의 보수를 지급하는 것부터 지방의회의 본분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전국의 광역의원 10%가 부정비리에 연루되어 사법처리 되었다는 보도는 참으로 암울한 소식이다.

16개 시도의 광역의원이 모두 738명인데 그 중에서 71명이 법망에 걸렸다. 기초의원은 2888명인데 155명이 법의 신세를 졌다. 그들의 범죄유형은 다각적이다. 아무래도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부정선거에 연루된 사람이 가장 많다. 음주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 뇌물죄, 상해죄, 공문서위조, 특가법, 정치자금법, 폭력, 사기, 알선수재, 변호사법위반 등 마치 범죄  전시장 같다.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온전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의원들의 자질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방의원을 거쳐 국회 등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도덕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우선 영리행위금지조례를 제정하도록 규정한 지방자치법을 준수하는 태도부터 자진해서 보이라. 자기의 사업과 연관 있는 상임위를 회피하고 지방의 특성을 연구하여 다른 전문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례제정을 미루는 것은 기회만 있으면 잠재적으로 부정비리를 저지르겠다는 것으로 오해받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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