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공언한 대로 다음 달 운반 로켓 '은하 3호'에 탑재된 '광명성 3호'를 쏘면, 미국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를 약속한 '2·29 미·북 합의'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이 합의에 따라 북한에 주기로 한 24만t의 영양지원도 취소하고,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이 희망하는 대미 관계 개선도 상당기간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2·29 미·북 합의는 작년 말 김정일 급사(急死) 후 새 지도자가 된 김정은이 집권 두 달 만에 승인한 대외분야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그런데 북한이 16일 만에 김정은의 합의를 스스로 뒤집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정부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 상황이 점점 예측불허로 치닫고 있다"고들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무성 주도로 이뤄진 미·북 합의를 군부가 뒤엎은 것"이라고 했다. 미사일 실험 결정은 김정은 시대의 대외 정책 주도권을 놓고 외무성과 군부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 정권 말기 외무성은 군부에 밀려 숨죽이며 지냈다"며 "김정은 시대 개막과 함께 외무성이 북미 대화를 통해 영향력 확대에 나서자 군부가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측이 맞다면 김정은이 북한 내 권력기관들을 전혀 장악하지 못한 채 이들 기관의 다툼에 휘둘리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의 권력 장악 능력이 아직은 완전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이 군부의 입김에 휘둘리는 듯한 정황들이 속속 포착된다"고 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를 선언한 2·29 미·북 합의 이틀 뒤인 지난 2일 김정은이 군 수뇌부를 대동하고 전략로켓사령부를 시찰한 것도 미·북 합의를 승인해 놓고 군부의 눈치를 보는 흐름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북한 군부는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며 "대적 구호를 놓고 군부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것은 김정은의 뜻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이와 정반대의 의견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 북한의 제1 관심사는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올해 태양절(4월 15일)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라며 "북한의 모든 행위가 다 여기에 종속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 태양절을 계기로 '강성대국 진입'을 선포하기 위해 정권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왔다. 태양절을 맞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강성대국 진입과 김정은의 대관식(戴冠式) 자축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됐다는 것이다.

핵실험을 하면 우방인 중국·러시아도 북한 편을 들 수 없지만 장거리 미사일은 다르다. 2009년 4월 대포동 2호 발사 때처럼 북한이 '인공위성'이라 강변하면 중국·러시아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김정은 시대 개막을 알리는 축포용"(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립외교원 윤덕민 교수는 "북한엔 대미(對美), 대중(對中) 관계도 중요하지만 (미사일을 쏴야 하는) 국내적 수요가 크다"고 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리스크 관리에 신경이 곤두선 미국이 북한과의 '2·29 합의'를 함부로 깨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북한은 끝까지 인공위성 발사라고 강조하며 2·29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 것"이라며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 제1 관심사인 미국으로선 어렵게 얻어낸 2·29 합의를 폐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소 A 연구원은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가 잠시 단절되더라도 결국엔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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