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는 것부터 세상은 뒤틀려 있다. 꼼수라는 말 자체가 점잖은 입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할 말이다. 예로부터 예의를 알고, 염치를 차리는 집안에서는 쌍스러운 말은 아예 쓰지를 못하게 한다.

물론 욕지거리도 행여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집안에서 하는 말이 담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얘기도 다 이런데서 파생된 경구다. 양반과 상인(常人)의 구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더구나 출입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말에 신경을 썼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입장에서 아무나 하는 용어를 입에 쉽게 올려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쓰는 것은 막되 먹은 사람이나 하는 짓이지 체통과 인격을 갖춘 사람은 말을 가려서 쓴다. 이를 자제하지 못하면 그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를 통해서 공직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남보다 우수한 면이 많아야 한다. 남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일도 나라와 민족에 도움이 된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해낼 수 있는 자신과 책임감은 더 말 할 나위도 없이 중요하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이나, 부정부패에 맞서 혁명의 불길을 올렸던 4.19혁명공로자들은 확고한 신념으로 국가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에는 국가의 간성으로 나라를 지켜냈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는 오늘날 세계에 빛나는 국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우리는 자기희생을 통해서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꼼수를 모른다. 얄팍한 꼼수에 놀아나는 젊은이들의 세대는 또 나름대로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젊은이를 위한 무대가 있고, 청소년만이 드나드는 업소가 생긴 지 오래된다. 따라서 그들 세계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것이 사회의 전통적인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옳은 행위였을 때에는 찬사를 보내야 마땅하다. 그런데 거꾸로 가면 어떻게 될까. 겉으로 보면 그럴듯한데 실제로 들어가면 엉망진창인 경우도 흔하다. 나꼼수라는 인터넷 방송이 예절과 순리 그리고 합리성을 무시한 채 이 나라를 흔드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여기에 젊은이들이 열광한다고 하지만 한 가닥 트렌드에 불과하다. 행여 그 세계에 끼는 척이라도 해야지 자칫하면 왕따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총기사고를 일으킨 한국계 미국시민권자가 학교에서 왕따 당한 앙갚음을 했다고 자백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나꼼수의 ‘꼼수’는 정나미기 떨어지는 저질이지만 이를 나쁘게 표현하면 주위에서 이상한 놈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오히려 나꼼수에 열광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나꼼수는 이러한 심리를 꿰뚫고 있다. 그래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꼼수를 창작해낸다.

더 무지한 말을 써야하고, 남들에게 혐오감을 안기는 말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가뜩이나 언어구사가 광범위한 우리나라 말이 그들에게는 신나는 요리감이다. 식초 넣고, 계피 뿌리고, 울금까지 섞으면 지독한 향신료가 된다. 이들에게는 이게 맛 난다. 말을 마구잡이로 굴릴수록 많은 이들을 자극할 수 있다. 가능하면 더 쌍스러운 게 박수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민주통합당 후보로 노원갑구에서 출마한 김용민의 발언은 나꼼수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

“시청역 앞에서 오버하고 지랄하는 노친네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시청역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없애면 된다.” “미국에 대해서 테러를 해야 한다. 유영철을 풀어서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여성 국무장관)를 강간해 죽인다.” “부시대통령을 사퇴시키려면 주한미국들을 다 생포해 인질로 삼고 48시간 내에 부시가 사퇴하지 않으면 한 명씩 장갑차로 밀어버린다” 라고 방송한 것이 동영상으로 공개되었다.

이에 대해서 여론이 들끓자 그는 “성누리당(새누리당을 비꼰 듯함)의 네거티브 공세가 실패했다. 쫄리면 죽으시든가” 하면서 여전히 입심으로 맞섰다. 그런 말을 한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태도다.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줘야 된다.” “여자는 구멍이 하나 더 있다.”는 말로 입지가 꺾였던 사람이나 “노인네들은 집에 가서 쉬라”는 말은 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사위를 삼아도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김용민을 추켜세웠던 소설가 공지영과 서울대교수 조국까지도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유독 부정경선으로 물러난 이정희만이 “김용민을 믿는다.”고 강변한다.

이 사태로 인해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지 여부는 관심 없다. 다만 한 나라의 국민 대변자가 되려는 사람의 품격이 이다지도 저질스러워서야 어디 부끄러워서 낯을 들기도 어렵다. 되도록 더 이상의 논란은 피하는 게 나라의 체면이 서는 일로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등단하여 유영철 사면이나 주장하고 공공연히 강간을 조장한다면 나라꼴은 어떻게 될까. 꼼수가 정치를 하면 어찌 될 것인지 미래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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