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인구의 29%나 차지… 선진국의 4배 수준, 인구비례 식당수 美의 7배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이달 초 9개 경제 관련 연구기관장을 비공개로 초청해 자영업자 문제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 자리에는 윤창현 금융연구원장, 김대식 보험연구원장,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김흥수 건설산업연구원장,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조성훈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 전인우 중소기업연구원 기조실장이 참석했다.

금감원장이 민·관 경제 연구원장을 불러 모아 자영업자 문제 해법의 아이디어를 구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근 직장에서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앞다퉈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경쟁이 심화돼 소득은 쥐꼬리 수준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100만명 이상이 자영업 창업에 나서지만 동시에 80만명 이상이 폐업하고 있다. 창업과 폐업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가계 부채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또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실패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사회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자영업자 비율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아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자영업자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취업인구의 28.8%가 자영업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국가는 터키(39.1%), 그리스(35.5%), 멕시코(34.3%)뿐이다. 미국(7.0%), 노르웨이(7.7%)의 4배 수준이다.

연구기관 수장들은 국내 자영업자의 경우 규모가 영세하고 생계형 업종에 집중돼 있어 과당 경쟁에 따른 사업 실패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현재 도소매·숙박·음식료 부문 등 영세 서비스업 비중이 전체 자영업자의 40%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음식점이 인구 1000명당 12.2개꼴인데 미국은 1.8개에 그친다.

부동산중개업소도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에 1.5개꼴로 일본(0.4개)의 4배에 가깝다.

권 원장은 "장사가 안 돼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은 재취업도 어렵기 때문에 빚을 내서 재창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은행 대출보다 금리 부담이 높은 제2금융권의 자금에 의존하고 있어 가계 부채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몇년 전 중소기업에서 퇴직한 박모(56)씨는 인쇄업체를 차렸지만 계속 자금난을 겪었다. 부족한 사업자금을 카드 대출로 조달하다 원리금 상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베이비붐 세대가 직장에서 은퇴한 뒤 재취업 기회를 잡지 못하고 창업시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1955~1964년생은 900만명에 달한다. 일부 연구기관 수장들은 "월 소득이 100만원도 안 되는 영세 자영업자나 자영업 등록만 해놓고 휴업 중인 사람도 취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실제보다 낮게 나온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종 분산시키고 재취업 늘려야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지만 은퇴자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창업 업종을 다양하게 분산시키는 정책을 쓰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2월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사회복지·교육·문화예술·환경 분야에 종사하는 사회서비스업 종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프랑스에서 1990년대 사회서비스업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늘리고 자격제도를 만들어 관련 일자리를 매년 6%씩 늘린 바 있다.

농촌에 부가가치가 높은 일자리를 창출해 귀농인구를 늘리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존의 작물 재배형 농업보다는 꽃을 재배해 인테리어나 패션미용사업까지 벌이는 것처럼 농업과 서비스를 결합한 유망 업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IT(정보기술) 교육을 시켜 지역사회에서 재취업 기회를 주는 '리부트(ReBoot)'사업을 벌이고 있다.

권 원장은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자영업자들이 특정 분야로 쏠리지 않게만 해도 자영업자들의 위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기관장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가계가 한꺼번에 파탄 나지 않도록 자영업자 대출시 담보를 주택을 제외하고 사업장으로 국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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