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전 국민 절전운동과 함께 전기요금 현실화” 주장

지구온난화 탓인지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뛴 것처럼 요즘 날씨가 무덥다. 기상청은 올 여름 더위가 예년보다 무더울 것이라고 예보한 바 있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발생한 9·15 정전대란을 떠올리며 하절기 전력 수급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년보다 무더위가 이르게 시작돼 여름철 전력대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 빌딩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습니다. 구해주세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9월 15일, 서울을 비롯한 국내 대도시 소재 119센터에는 “작동 중이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섰으니 구해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날 서울 강남과 여의도 일대를 비롯해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 곳곳이 갑자기 정전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기가 끊긴 곳이 가정과 공장, 병원 등 1백62만여 곳에 달했다.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한 것’이 이날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밝혀졌다.

전력 수급을 관리하는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당시 전력 사용량은 오후 3시를 기해 6천7백만킬로와트를 넘어섰다. 예비전력이 역대 최저치인 1백48만9천킬로와트까지 떨어지자 전력거래소는 국민에게 예고할 겨를 없이 순환 단전조치부터 취했다.

예비전력이 4백만킬로와트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비상시 수급조절 운영계획 매뉴얼’에 따라 전국적인 정전을 막기 위해 지역별로 순환단전을 하도록 돼 있다.

일본은 산업용 전기요금 17퍼센트 인상

‘9·15 전력대란’으로 명명된 이날의 정전사태는 5시간 만에야 정상을 되찾았다. “북한의 테러 아니냐”며 불안해하던 국민들은 정확한 사태 원인을 파악한 후 ‘한국도 블랙아웃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지난 겨울은 극심한 한파에도 전 국민이 실내 적정 온도 준수하기, 내복 입기 등의 에너지 절약 운동에 동참, 동절기 최대전력(7천3백83만킬로와트)을 3백만킬로와트 절감했다.

정전대란이 발생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지난 4월 말. 서울의 낮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하자 명동과 강남역에 있는 상가들이 문을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가동해 언론으로부터 ‘전력낭비’라는 질타를 받았다.

이날 전력예비율은 7.1퍼센트로 나타났다. 전력예비율은 최소 10퍼센트가 돼야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올 여름 제2의 전력대란이 발생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여름도 되기 전에 전력예비율이 이렇듯 떨어진 데는 때 이르게 찾아온 무더위 외에 기름값 상승이 큰 이유다.

가스나 석유 등에 비해 저렴한 전기요금이 최근 기름값 상승으로 상대적으로 싸지자 기름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가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원가 대비 판매 요금을 나타내는 원가보상률이 90퍼센트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1백원을 투입하는데 90원도 안되게 팔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귀한 줄 모르고 펑펑 쓰는 면이 없지 않다.

자율절전 못하면 원전 추가 건설 불가피할 듯

가까운 나라 일본은 전기요금이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산업용 전기는 2.8배, 주택용 전기는 2.7배가량 요금이 높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17퍼센트 인상했고, 주택용 전기요금은 10퍼센트 인상할 예정이다.

타이완 역시 전력난 해소를 위해 이번 달 중순부터 산업용은 35퍼센트, 주택용은 16.9퍼센트 올리기로 했다.

한국의 경우 한전이 13.1퍼센트 인상안을 내놓았지만 물가 안정을 이유로 아직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5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이 경북 울진군 신울진 1·2호기 기공식에 참석한 후 주제어실을 둘럽고 있다. 정부는 전력 수급을 위해 1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5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이 경북 울진군 신울진 1·2호기 기공식에 참석한 후 주제어실을 둘러보고 있다. 정부는 전력 수급을 위해 1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9·15 정전사태 후 한국은 절전규제와 같은 강력한 수요 관리를 통해 안정된 예비율을 지켜왔다.

하지만 절전규제는 조업 손실, 근무 의욕 저하 등 부작용이 우려돼 한계에 도달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절전규제를 실시한 일본의 경우 일사병으로 노인들이 사망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해 전력 위기 대응 방식을 자율절전으로 바꾸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4월 ‘자율절전을 통한 전력위기대책’을 발표했다.

스마트미터를 활용한 실시간 요금제 도입으로 소비자가 가격에 반응하는 수요 반응 구조를 만들고 IT기술을 활용한 냉난방 부하제어 확대 및 태양광 등 소용량 신재생 전원을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일본은 이 대책안을 발표한 후 원전 54기를 올스톱시켰다. 일본의 원전발전량 비중은 한국과 비슷한 31퍼센트 수준이다.

이만한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는데도 잘 버티고 있는 것은 일본 국민들이 자율절전을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대 전력 생산량 7천9백만킬로와트 중 34퍼센트는 원전에서 생산된다. 현재 한국에는 21기의 원전이 있고, 이 중 20기가 가동 중이다.

정부는 화력에 비해 효율적인 원전을 앞으로 10기 정도 추가 건설해 증가하는 전력소비량을 맞춰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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