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장 등을 지낸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최근 불거진 매카시즘 논란에 대해 "그들은 정당한 질문을 하는 국민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색깔론은 내가 주사파였을 때도 써먹은 수법"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1989년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부터 시작된 전대협 소속 대학생의 '기획 방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1987년 고려대에 입학하면서 주체사상에 빠졌던 그는 아사자 수백만명을 양산한 북한 체제에 회의를 느끼고 1998년 8월 전향했다.

야권 인사들이 색깔론을 꺼내 들고 있다.

"매카시즘은 '근거 없는 의심'이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은 다르다.
이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김 의원은 이적 단체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활동으로 수배됐다.
임수경 의원은 무단 방북했다.
과거에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합리적인 의심이다.
생각이 법을 만드니까.
이게 매카시즘인가?
질문하는 국민을 그들은 공격하고 있다."

이해찬 의원은 북한인권법에 대해 "외교적 결례"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미국의 압박으로 사형을 면했다.

그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도 외국에 많은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은 북한인권법을 2004년에,
일본은 2006년에 제정했다.
유엔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인권은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얀마와 남아공의 인권 문제에도 '내재적 접근'을 하는가?
왜 하필 북한에만 내재적 접근인가?
입만 열면 우린 한 민족이라고 하면서 인권 문제만 나오면 다른 나라라고?"

색깔론은 왜 나왔다고 보나?

"주사파가 항상 써먹던 수법이다.
199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나도 '모독하지 마라. 어디서 색깔론이냐. 나는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학생일 뿐이다. 조국 통일을 하려면 북한을 알아야 했고, 김일성과 주체사상이 궁금했을 뿐이다'라고 반론을 폈다.

거짓말이었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해서 북한과 같은 사회로 만들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주사파 학생의 공통된 바람,
즉 고려연방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당시 나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색깔론은 전대협 세대가 자신을 지키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다.
그런 습성이 그대로 이어진 게 아니겠는가."

과거 전대협 소속 대학생의 방북을 기획했다.

"임수경에 이어 북한에 갔던 박성희·성용승은 1991년 '임수경 루트'대로 베를린을 거쳐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범민족대회에 참석한 뒤 베를린에 돌아왔다.

그들이 출국한 진짜 이유는 북한의 대학생 조직인 조선학생위원회와 회담하기 위한 상시적인 연대 기구(범청학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993년 베를린으로 갔던 최정남은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장이었던 내가 직접 선발했다.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이 그 친구도, 나도 굉장했다."

당신은 왜 생각을 바꿨나?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렸다.
대남 방송은 '끄떡없다'는 소리를 흘렸다.
나는 탈북자를 믿지 않았다.
'체제 비판적인 탈북자들은 원래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를린에 전화했다.
최정남이 받았다.
딱 두 마디 물었다.
'인민들이 굶어 죽고 있니?' '네, 그렇습니다'.
'노동당 간부들은 어떠냐?' '아주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충격을 받았다.

노동당은 인민을 위한 당이기 때문에 그 간부들도 같이 굶을 줄 알았다.
그의 말을 듣고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었다.
전향의 직접적인 계기다."

종북이 진보인가?

"진보의 가치라면 반핵(反核), 인권, 평화 아닌가?
원자력발전소에는 치를 떨면서 북한 핵무기 개발에는 침묵하거나 내재적으로 접근하자고 한다.

노동자 인권에는 격렬히 흥분하면서,
참혹하기 그지없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서는 어떤가?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공격 당시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
훗날 통일이 됐을 때 '북한 주민들이 그때 당신들 뭐 하고 있었나?
같은 인간으로서, 동포로서 도와줄 마음은 없었는가' 하고 물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내재적으로 접근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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