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경기 용인 일대서 최근 두 달간 53구 발굴

김일성의 적화야욕에서 비롯된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3년간의 전쟁으로 국군 14만9천명이 사망했고, 13만2천2백명이 실종됐으며, 9천6백명이 포로가 됐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 무한 책임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들의 60년 한(恨)을 풀어주는 숭고한 호국보훈 사업이기도 하다

지난 6월 1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용인 일대 야산에서 발굴한 국군전사자 3구의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13만여 명의 실종자 중 지금까지 수습한 유해는 5퍼센트에 불과하다. 국방부는 북한과 비무장지대에도 3만~4만여 구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용인 일대 야산에서 발굴한 국군전사자 3구의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13만여 명의 실종자 중 지금까지 수습한 유해는 5퍼센트에 불과하다. 국방부는 북한과 비무장지대에도 3만~4만여 구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야산에 한 무리의 기자들이 도착했다.

나지막하게 펼쳐진 산 능선에 올라서자 등산로를 경계로 남쪽으로는 향린동산이라는 전원주택단지가 있고, 북쪽은 용인 삼성 에버랜드의 부지임을 알리는 철조망이 둘러쳐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곳 야산 일대에서 지난 2개월 동안 53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국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된 이곳 용인 야산 일대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은 북위 37도 선까지 일시적인 후퇴를 했다(일명 1·4후퇴). 이후 유엔군이 반격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경기도 광주, 수원, 용인 등지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이번에 53구의 국군 유해가 발굴된 향린동산 야산은 미 1·9군단이 한강 이남 선까지 진격하는 ‘썬더볼트 작전’(1951년 1월 25일~2월 18일) 중 국군 1사단 15연대와 중공군 150사단 448연대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지역이다.

문화재 발굴 기법에 따라 과학적 진행

2000년부터 시작된 국방부의 유해발굴 사업은 매년 3월에서 11월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연인원 10만명이 동원되어 지금까지 6천5백42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5백43구의 유해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렸다.

발굴 현장 한쪽에는 유해발굴 현장에서 쓰이는 장비와 실제 발굴된 전사자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최첨단 장비에서부터 낫, 호미 같은 농기구까지 다양한 장비가 사용되고 있었다.

현재 국방부는 유해발굴 사업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하고, 업무를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자체개발한 전사자종합정보체계(KIATIS)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과장인 주경배 중령의 설명이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항이 전산으로 입력되어 본부와 정보가 공유됩니다. 발굴 전 먼저 주변 지형이나 발굴지의 상태를 입력하고, GPS를 이용해 발굴 지점의 최종 위치를 기록한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갑니다.

유해가 발견되면 사진과 도해로 컴퓨터에 기록합니다. 유해발굴사업의 최종 목적은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해훼손과 DNA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감식단 부대원들은 마스크와 수술용 장갑을 끼고 유해를 다룹니다.”

주 중령은 “발굴지에서 유해가 발견되면 지역 사단에서 지원된 일반 발굴병사들은 곧바로 작업을 중단하고, 그때부터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전문가들이 투입된다”며 “감식반은 사학, 고고학, 인류학 등을 전공한 전문 발굴요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전사자 유해발굴에 사용되는 장비와 실제 발굴된 유품들. 발견된 국군 유해는 사진 왼쪽에 보이는 오동나무관에 입관한 후 태극기로 감싸 정성과 예를 다해 운구한다.
전사자 유해발굴에 사용되는 장비와 실제 발굴된 유품들. 발견된 국군 유해는 사진 왼쪽에 보이는 오동나무관에 입관한 후 태극기로 감싸 정성과 예를 다해 운구한다.

전국 1백55개 전투지역 유해 지도 만들어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며, 신원 미확인 유해는 정밀 감식을 위해 3~4년간 별도로 보관한 후 국립서울현충원 충혼탑에 임시 안치된다. 유해발굴지에서는 북한군이나 중공군 같은 적군 유해도 같이 발굴되기도 하는데, 이들 유해는 인도적 차원에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매장한다.

주경배 중령은 “유해발굴을 위해 어느 지역과 지점을 굴토할지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유해발굴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6·25전쟁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참전군인들의 증언과 지역주민들의 제보”라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사(戰史)를 찾아 대조하고, 현장을 답사하여 전투 흔적이나 유해가 있을 만한 교통호, 개인 참호 등을 찾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미 정밀 조사와 탐사를 통해 전국 1백55개 주요 전투지역의 유해소재 지도를 만들어 이를 토대로 체계적이고 순차적인 유해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주 중령의 설명이다.

“강원도에서 발굴을 진행할 때 어느 돌산 정상에서 유해가 흙에 묻히지 못하고,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투 현장이 너무 치열해 적을 쫓거나 후퇴하는 과정에서 전사자의 시신을 미처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땅에 묻힌 유해도 겨우 한 뼘 정도 깊이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해를 발굴할 때는 1미터 간격으로 구획을 정하고 나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표토층을 파봐야 합니다. 금속탐지기도 사용하지만, 인체의 뼛조각을 탐지하는 장비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파봐야 알 수 있습니다.”

용인 일대처럼 유해발굴 지역이 높은 산이 아니거나 도심과 가까울 때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강원도처럼 발굴 현장이 험준한 산속일 경우는 4시간 이상 산을 올라 현장에 도착하고, 겨우 몇 시간 발굴하고 다시 내려오는 고된 과정을 몇 달 동안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전사자 친인척들의 유전자 채취 도움 절실

“지금도 매일 1천명이 전국 10여 개 지역에서 6·25전쟁 때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선배들(전사 국군)을 찾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숭고한 호국보훈 사업에 임하는 유해발굴감식단의 자부심은 어느 부대보다 높습니다.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13만명의 호국용사를 마지막 한 명까지 찾을 때까지 유해발굴 사업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주 중령은 “60년 만에 애써 찾은 국군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파악될 수 있도록 국민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사자 신원파악을 위해서는 유가족의 유전자와 대조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가족들이 DNA 시료 채취에 적극적인 협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주 중령은 “6·25 전사자 가족은 친가·외가의 8촌까지 가까운 보건소나 군병원에 가서 DNA 시료 채취에 협조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료 채취에 협조한 사람에게는 국방부가 5만원 상당의 무료건강검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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