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영웅들,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NLL 사수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서해상에서 남북 해군 간에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해상교전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꽃게잡이 어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6월 7일 경비정 1척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이래 해상교전이 발발한 6월15일까지 9일간 총 11여회에 걸쳐 우리 관할해역을 침범했다.

제1연평해전 당시의 상황.(사진 제공 해군)
제1연평해전 당시의 상황.(사진 제공_해군)

◆ 북한 어선 및 경비정의 NLL 침범(1999년 6월 7~8일)

6월7일 오전 9시경 북한 경비정 1척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후 8일까지 양일간 북한 어선 15척이 NLL을 4~7㎞까지 침범하고 북한 경비정이 3~4회 침범과 철수를 반복했다.

이에 우리 해군은 국제법에 의거, 고속정 2개 편대의 신호로 철수를 요구하다 북한 함정의 행위가 의도적이라고 분석 판단해 고속정을 사용, 진입차단 기동작전을 펼치게 된다.

◆ 상호 ‘밀어내기 충돌’ 시도(1999년 6월 9~14일)

9일부터는 북한이 경비정을 10척으로 증강하는 한편, 경비정·어뢰정 편대를 구성해 NLL을 7~13.7㎞까지 침범하며 도발의 수위를 높였다.

우리 해군은 초계함 2척, 고속정 5개 편대를 현장에 투입해 북한 전력대비 우위전력을 유지하면서 적의 도발에 대비해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춘다.

6월 9일 오전 6시부터 10일 오전 4시까지 북한 경비정 8척 중 7척이 NLL을 13.7㎞까지 침범했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우리 고속정에 북한 경비정이 충돌기동을 시도해 양측 함정 간에 경미한 손상을 입게 된다.

이어 6월 11일 오전 3시 30분경부터 오후 1시 40분까지는 북한 경비정 4척이 NLL을 13.9㎞를 침범하고 우리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해 우리 고속정은 이에 맞대응 충돌, 북한 중형 경비정 2척을 대파하고 2척은 경미한 손상을 입혔으며 우리 고속정은 4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으로 상호교전(1999년 6월 15일)

교전이 일어난 15일에는 오전 8시 45분 북한경비정 4척이 NLL을 침범해 우리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 오전 9시 어뢰정 3척을 포함해 7척의 북한 함정이 우리 관할해역을 침범해 우리 초계함에 고속 접근하자 오전 9시경 우리 고속정 6척이 맞대응하며 역충돌을 시도한다.

우리 고속정이 북한 어뢰정을 대상으로 충돌을 시도하자 북한 함정에서는 수류탄 4~5발을 던지고 인근에 있던 북한의 경비정과 합세해 소총사격과 25mm 기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고 추가로 증원된 3척의 경비정을 포함해 총 10척의 북한함정들이 우리 측 함정을 향해 공격해왔다.

북한 함정의 선제 기습공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들을 향해 돌진하며 40mm와 76mm 기관포로 응사해 교전이 일어난 지 14분 여 만에 북한 함정을 격퇴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교전이 발발한지 14분만에 10척의 북한함정들 중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대형 경비정 대파, 중형 경비정 2척 반파(기동불능상태로 예인), 소형 경비정 2척 파손 등 최소 30여명 이상의 사망과 70여명을 부상시키는 큰 전과를 기록했다.

우리 해군의 피해는 4척의 고속정과 1척의 초계함만이 기관실 및 선체 일부가 파손되고 9명의 장병들이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는데 그쳤다.

그러나 제1연평해전은 이러한 수치적 전과보다는 북한과의 교전을 통해 기동력과 화력, 작전능력은 물론 장병 정신전력도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 의의가 있다.

<제2연평해전>

우리 국민들에게 제1연평해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6월.

제2연평해전은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해 터키와의 3, 4위전 경기가 예정되어 있던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 357호정을 향해 의도적인 기습공격을 감행하면서 발생했다.

제2연평해전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지금은 해군 2함대에 전시 중인 참수리 357호정.(사진 제공_해군)
제2연평해전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지금은 해군 2함대에 전시 중인 참수리 357호정.(사진 제공_해군)

오전 9시 46분.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하기동을 시작하자, 이를 포착한 우리 해군은 대북 경계 강화와 함께 초계근무 중인 고속정 편대에 조업어선 통제 및 대응태세를 철저히 유지할 것을 지시했다.

9시54분. 북한 경비정 684는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했고, 참수리 357, 358로 이뤄진 우리 고속정 253편대가 긴급 출동해 대응기동과 경고방송을 하며 접근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남하를 멈추지 않았다.

10시25분.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 357호정을 향해 미리 조준된 85mm포를 비롯한 모든 포를 동원해 공격을 가한다.

북한의 악의적 기습공격에 참수리 357호정은 정장 윤영하 소령과 4명의 대원이 전사하고 통신실 등 중요한 지휘체계에 손상을 입었다.

우리 측은 곧바로 인근 고속정과 경비중인 초계함 등이 교전에 가담, 북한 경비정을 향해 대응사격을 가했다.

10시43분. 우리 해군의 집중포격을 받은 북한 경비정은 퇴각을 시작했다.

31분 간의 교전결과, 북한 경비정은 외부 갑판이 대부분 파괴됐으며 30명 이상의 전사상자가 발생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 357호정은 치료 중 숨진 박동혁 병장을 포함해 전사 6명, 부상 18명의 피해를 입었다. 기습공격으로 우리 측의 인명손실이 발생하였으나 우리 해군 장병들은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NLL을 사수했다.

◆ 서해의 영웅들

고속정과 초계함의 일부 파손과 장병들의 비교적 가벼운 부상이 남았던 제1연평해전과는 달리 제2연평해전은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북한 경비정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다가 적의 기습공격에 숨을 거둔 정장 故 윤영하 소령. 조타장으로 교전 당시 끝까지 타기를 잡고 있었던 故 한상국 중사.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발칸포 방아쇠를 쥐고 있었던 故 조천형, 故 황도현 중사. M60 사수로 자신의 몸을 은폐하기도 힘든 갑판에서 응전사격 중  산화한 故 서후원 중사. 의무병으로서 부상당한 전우를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피격을 당해 3개월여의 투병생활 끝에 꽃다운 청춘을 접은 故 박동혁 병장.

교전 후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정장을 대신해, 부하들을 독려하며 지휘했던 이희완 중위. 왼쪽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응 사격을 멈추지 않았던 권기형 상병.  

위국헌신 군인본분,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투혼, 하나로 뭉쳐진 전우애가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 이들 모두는 그날의 영웅이었다. 

◆ 제2연평해전 사이버추모관 연중 운영

인터넷에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6명의 영웅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

제2연평해전 사이버추모관(webzine.mpva.go.kr/mpva)이 바로 그 곳이다.

제2연평해전 사이버추모관을 방문하면 헌화, 분향과 함께 묵념을 하며 영웅 6인의 넋을 기리는데 동참할 수 있다.
제2연평해전 사이버추모관을 방문하면 헌화, 분향과 함께 묵념을 하며 영웅 6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데 동참할 수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2008년부터 6인 영웅들의 고귀한 업적을 기리고, 대한민국 국민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이들을 추모 할 수 있도록 매년 6월이면 사이버추모관을 운영했다.

올 6월 13일부터는 운영서버의 보안취약성을 개선해 연중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추모관을 방문하면 서해를 지킨 영웅 6인을 만날 수 있으며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헌화, 분향, 묵념과 함께 추모글까지 남길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6·25,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과 같은 분단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노출되어 있다.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한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이 나라.
우리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들의 죽음이 가치 있는 일로 남을 수 있도록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자료 제공=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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