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경기부진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감 표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2일 예상을 뒤엎고 기준금리를 3년5개월만에 전격 인하한 것은 장기화하는 유로전 위기 등의 영향으로 국내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금통위는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방향’에서 경기부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감을 물씬 풍겼다.

우리 경제의 쌍두마차인 수출과 내수가 급격히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분기 성장률은 1분기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이를 감안할 때 한은이 올해내 1~2차례의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중수 총재는 “성장 전망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통해 책무를 다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국내 경기 부진 장기화 ‘경고등’‥“2분기 성장률 1분기 보다 못하다”

한국은행은 당초 하반기에는 분기별 1%(전기대비) 이상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분기별 1%대 성장은 연율로는 4%대 성장을 말한다. 상저하고형 성장이 가능하는 게 한은의 기본적인 경기 인식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이후 각종 경기지표가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한은의 시각도 바뀌었다. 연초 가파르게 상승하던 제조업생산은 지난 3월 -3.2%(전월비)를 기록한 이후 4월 0.9%, 5월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우리경제의 근간인 수출도 지난 5월 -0.6% 등 석달 연속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비투자와 소비 등 내수 경기도 전반적인 부진에 빠져있다.

이러한 경기 부진은 장기화하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출발점이다. 게다가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미국 경제의 더블딥 우려 등도 나오고 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와 중국인민은행이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이들 지역에 경기부양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인식은 금통위가 발표한 ‘통화정책 결정문’에서도 확인된다. 금통위는 “국내경제는 유로지역 리스크 증대, 주요 교역상대국 경제의 부진 등으로 GDP갭이 상당기간 마이너스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GDP갭(gap)이란 잠재 GDP(국내총생산)와 실질 GDP의 격차를 말한다. GDP갭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우리 경제의 생산능력이 잠재성장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 일각에서는 오는 13일 발표되는 한은의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3.0%까지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분기 GDP 성장률이 0.5% 내외에 불과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공동락 토러스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경제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GDP 갭이 상당기간 마이너스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힌 점은 그동안 강조해왔던 ‘우리 경제는 장기 성장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과 확연히 다른 해석”이라며 “한은의 중장기 성장 전망이 전면적으로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가계부채·물가 부작용 없나‥경기부양 효과 “제한적”

한은은 이번 금리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김 총재는 가계부채 대출잔액이 향후 3년간 현재보다 0.5% 늘어나는데 그치는 정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가계의 대출 이자 상환 부담이 줄고 경기 부양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소비자물가에 대한 영향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지난 3월 이후 넉달째 2%대의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소비자물가는 이번 금리인하의 든든한 배경이었다. 한은은 이번 금리인하를 통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0.02%포인트와 0.09%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는 반면 올해 물가상승률에는 영향이 없고 내년 물가상승률의 경우 0.03%포인트 상승 요인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대부부의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김승룡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가계부채가 늘어나더라도 미약할 것"이라며 "가계는 이미 부채 부담이 큰 상태인데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경기가 나빠지고 연체율이 올라가는 추세여서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기보다는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정부의 가계부책 억제 기조가 아니더라도 은행 자체적으로 올해 들어 리스크 관리 쪽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로 돈이 풀리기 때문에 가계부채와 물가에 어떤 형태로든 악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대출금리를 내리는 효과가 미미하다면 기준금리 인하는 가계부채 총량을 늘리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가계부채가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어서 한은이 그것까지 고려해 가계부채가 더이상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계부채 증가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

자금시장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고정금리 대출 취급을 늘리려고 하는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게 되면 누가 고정금리 대출을 받으려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경기 부양 측면에서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한 민간 경제연구기관의 관계자는 “투자와 소비가 부진한 것은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경기가 크게 개선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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