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경제 회복세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재정수지 악화의 심각성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이며 이에 따른 문제점 및 관건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지난 10월 16일 미국 재무부는 2009 회계년도(2008.10~2009.9)의 재정 적자가 1조4,171억 달러로 집계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2008 회계년도 재정 적자의 3.1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GDP의 9.9%에 해당한다. 백악관예산관리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에 따르면 2009년 말까지 누적될 국가 부채는 GDP 대비 90.4%에 해당하는 12조8,67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미국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그 원인 및 파급효과에 대한 논란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1월3일 오바마 정부는 올해 초 확정된 7,870억 달러의 재정 확대 정책에 이어 추가적인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실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피력하였다.

본고에서는 미국의 재정 건전성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인지 살펴보고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성 및 위험 요인들을 점검해 본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 효과의 향방에 따른 경기 흐름의 변화 가능성도 짚어본다.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의 재정 건전성이 가장 크게 훼손되었던 시기는 다섯 기간에 걸쳐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규모의 국방비 지출에 기인하여 재정 적자 및 국가 부채는GDP 대비 각각 1943년 30.3%, 1946년 121.7%까지 증가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권 하에서는 국방비 증대 이외에도 대대적인 감세 및 규제 완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시에 목격되었으며, 이는조지 H.W. 부시 정권까지 이어졌다. 조지 W.부시 정부 역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전에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감세 정책 기조를 유지하였다. 현재 오바마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재정 악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194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GDP대비 부채 규모는 현재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아직 OECD 평균인 91.9%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올해 6월 발표된 OECD 경제 전망(OECD Economic Outlook No.85)에 따르면 내년 미국의 부채 규모 역시 올해보다 증가한 GDP대비 97.5% 수준으로 예측되지만 OECD 평균인 100.2%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이후의 재정 상황에 대한 美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백악관 예산관리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등 미국 내 주요 기관들의 전망은 긍정적인 편이다. 재정 적자는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줄어들다가 이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 부채 규모도 올해 이후 누적 속도가 둔화되다가 안정세를 되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관들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6월 10일 자체 보고서(2009 Article Ⅳ Consultation with the U.S.)를 통해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가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음을 지적하였고,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경우 역시 가장 최근에 발표된 경제 전망(OECD Economic Outlook No.85)을 통해 미국의 재정 악화 정도가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렇듯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현황과 전망이 비관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재정 적자는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근본 적자의 비중이 크다는 것과, 둘째, 미국의 재정은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 셋째, 성장세 제고를 통한 세수(稅收) 증대를 노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 등이다.

근본 적자(Primary Deficit) 심각성 두드러져 국가별로 재정 건전성의 정도를 비교하기 위해우선 파악해야 할 것은 근본 적자(Primary Balance)의 규모이다. 근본 적자란 그 동안 발행된 국채의 이자 지불분을 제외한 순수한 의미의 재정 수지를 일컫는다. 미국의 GDP 대비 근본 적자는 6.2%로 일본이나 스페인보다 높으며, 최고치인 영국의 7.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의 상당 부분이 과거 부채에 대한 이자지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주요국들에 비해 심각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자 지불분을 제외한 실질적인 의미의 적자 규모인 것이다. 근본 적자는 과거 정권으로 부터 이어받은 재정 상황보다는 현 정부 재정운영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오바마 정부의 재정 운영상의 적자수준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가 경기부양의 가능성, 높은 보건의료 비용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적자 요인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채 이자가 재정 수입으로 충당될만한 수준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명목GDP와 국채 금리간 차이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차이는 금리가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 경제 성장률을 상회할수록 낮아져, 실질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4.5%p로 국채 이자 조달의 부담이 크지만 근본 적자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요국들 사이에서 심각성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 부채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채이자부담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근본 적자의 축소에 주력하면서 완만한 물가상승과 명목 GDP의 확대 속에서도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거시경제적 여건은 현실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의 재정 문제는 단순히 그 규모로만 파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미국의 경우 일본에 비해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올해 GDP 대비 재정 적자는OECD 국가 중 6번째 규모이며, 국가 부채는GDP의 189.6% 수준으로 두 번째로 높은 이탈리아의 122.9%, 일본을 제외한 OECD 국가 평균 63.1%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일본의 부채가 이처럼 불어난 것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목 건설등 대대적인 공공 지출을 늘려온 데다 고령화에 따른 세수 부족에도 불구하고 감세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비효율적인 정부지출과 감세 정책의 문제점은 미국이 향후 취해야 할 정책적 노선을 고려하는 데 지양해야 할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부 채권의 비중은 2002년 이후 급증하고는 있지만 2009년 3월말 기준으로 아직 6.3% 수준에 그치고 있다. GDP 대비부채의 절대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메우기 위해 발행되는 정부 채권을 국내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부채의 90% 이상이 대내적으로 조달된다는 것은 재정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역시 자체적인 정책 조율에 의해 모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미국의 경우 해외 차입에 의존한 정부 채권의 비중이 일본과 비교해 4배가 넘는 25.9%를 기록하고 있다. 재정 적자의 재원을 해외 자금을 통해 조달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만약 미국 국채 및 공공채 등에 투자된 해외 자금이 대거 유출될 경우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채권상환 능력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히 하락할 경우 국채 금리가 명목GDP를 훨씬 상회하게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 경우 이자 부담도 가중되어 재정 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몇 차례 민간 수요 증대를 통한 성장세 회복이 정부의 재정수지를 개선시킨 사례가 있었다. 실제로 대대적인 감세 기조가 강했던 1980년대를 제외하고, 경제 성장 촉진을 통한 세수증대가 재정 건전성 회복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한 막대한 규모의 국방비 지출은 일시적으로 최악의 재정 상황을 초래했지만, 고용 증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대공황 이후 침체되어 있던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자 세금을 통한 정부 수입이 많아지면서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고 부채의 상당 부분 또한 단기간에 상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위적인 증세 정책을 통한 정부 수입 확보가 아닌 경제 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가 재정악화 해소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경기가 빠르게 활성화될 경우 인위적인 정책 개입 없이도 세수가 증대되어 가장 자연스러운 경로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성장세를 제고할 만한 동인(動因)을 찾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함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재정 악화의 탈출구를 모색한다는 의도도 분명히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재정 상황은 부채 확대 추세가 수년 내 둔화되고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공식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우려할 만한 요소들이 상존해 있다.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재정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운신의 폭을 큰 무리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재정악화를 얼마나 진정시킬 수 있을지의 관건은 경기 부양을 통한 성장동력의 확보,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보건의료 절감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지난 2월에 확정된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of 2009) 중 올해 사용되기로 계획되었던 1,850억 달러를 초과하는1,950억 달러가 이미 현재까지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세 제고 효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0월의 실업률이 26년만에 처음으로 실업률이 10%를 넘어서는 등 노동 시장의 침체가 극심하다. 이에 따라 올해 11월말 종료 예정이었던 최초 주택구매자 대상 8천 달러의 조세 지원이 내년 4월까지 연장되고 실업수당자금 지원 기한을 연장시키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등 최근 민간 수요 진작을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이 시도되고 있지만, 경기부양자금을 적재 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보건의료 개혁 등과 관련한 정부지출의 절감 가능성 문제이다. 과거 미국의 정부지출 구성을 살펴보면, 네 번의 재정 위기모두의 경우 재정 악화가 막대한 규모의 국방비 조달을 위한 재정 지출에 상당 부분 기인한 반면, 오바마 정권 하에서는 이보다는 보건의료 및 금융 관련 지출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재정 위기 시기와는 다르게, 현재 미국 재정 위기의 주 원인은 국방비 지출이 아니라 보건의료 및 사회보장 비용, 그리고 일시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금융 관련 자금이며, 이들의 향방이 중요한 변수이다. 특히 현재 전체 정부지출 중 20%를 차지하는 보건의료 부문의 지출이 당장 내년부터는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 부문에 대한 조정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13일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가결되고 11월 7일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보건의료 개혁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오바마 정부는 현재 보건의료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디케어(Medicare: 고령층 대상)와 메디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대상)부문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정 적자 절감 효과가 증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법안내용이 상원 심의 과정에서 크게 수정되거나 반대론자들의 이의에 부딪쳐 추후에 변경될 경우 중장기적인 세출 감소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이번 개혁을 통해 공공보험(Public Option) 등 새로운 보건의료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절감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는지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증세를 통한 세수(稅收)의 확대도 지켜볼 부분이다. 미국의 조세 수입은 현재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OECD 국가들의 평균치인 GDP대비 37.1%에도 크게 못 미치는 31.3%를 기록하고 있어 향후 증세 기조가 강화될 여지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민주당 정권은 공화당 정권보다 증세 정책을 선호해왔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강도 높은 증세 정책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이제 막 회복세를 되찾기 시작한 실물 경제 부문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 시장의 위축이 아직 완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세금이 인상될 경우 민간 부문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여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증세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은 부문의 세율을 올리고 경기 회복 효과가 큰 부문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는 효율적인 조세 정책을 운영하여, 전반적인 재정 적자 감소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 재정의 현주소는 정부지출을 통한 민간 수요 회복으로 성장력을 제고시키는 한편, 세수 증대 및 금리 안정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개선시키고 해외 자본에의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는, 서로 상충되는 과제들을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경우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제회복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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