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금리ㆍ고객차별ㆍ과잉경쟁ㆍ과도한 급여 등 손질

금융권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자 금융당국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신뢰를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하는 금융권에서 거액의 횡령 사건을 비롯한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대출서류 조작, 학력차별, 지나친 가산금리 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권의 모럴해저드 사례로 지목된 가산금리 문제와 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다음 달 중 개선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차별금지 TF는 은행권의 불합리한 차별 관행을 망라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시행 방안을 만들어 각 은행 업무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다.

학계와 업계 관계자들이 TF에 참여해 외국 사례와 국내 판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가산금리 TF에선 은행의 가산금리 책정 절차를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만드는 모범규준을 마련한다.

다만, 금리(가격)에 당국이 개입하기는 어려운 만큼 선언적인 내용을 위주로 담고 은행이 자체 시스템을 만들어 가산금리 체계를 손질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금감원은 보험의 약관대출 가산금리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만들도록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허창언 금감원 보험감독국장은 "약관대출은 보험계약을 담보로 해 채무불이행 위험이 거의 없는데도 지나친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나친 수익 추구에 제동을 거는 데도 모럴해저드를 예방하는 측면이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은행의 경영실태평가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6개 항목 가운데 수익성 항목의 배점 비중을 15%에서 10%로 줄였다.

그 대신 경영관리적정성 항목에 `사회적 책임 이행실태'와 `성과보상체계 적정성'을 새로 만들었다.

은행이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의미와 생산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여기에 더해 수익성 항목의 계량지표 가운데 `순이자마진율(NIM)'을 삭제해 올해 하반기 검사 때부터 적용키로 했다.

순이자마진율은 은행이 예ㆍ대금리차로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 계산하는 비율이다. 은행이 적정수준의 수익을 유지해야 건전성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이자마진율을 따져왔다.
그러나 금감원은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많이 올리고 예금금리는 조금 올리는 등 소비자의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순이자마진율을 삭제했다.

양현근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은행의 과도한 수익 추구도 모럴해저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횡령이나 서류조작 등 금융사고가 빈발해 은행에 내부통제를 강화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유층 회원에게 지나친 혜택을 제공하는 초우량고객(VVIP) 서비스도 모럴해저드의 소지가 있어 당국은 이를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VVIP 서비스로 들어가는 비용이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돼 `돈 많은 사람'이 대우받고 `돈 적은 사람'은 차별당한다는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VVIP 신용카드의 신규 발급을 사실상 제한하고, 기존에 발급된 VVIP카드의 수익성도 재검토할 방침이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지난달 31일 카드사 사장단과 간담회에서 "과도한 부가서비스 제공 등으로 논란이 되는 VVIP 카드는 수익성을 재검토해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감원은 은행의 VVIP 마케팅에 대해서도 점검할 계획이다.

은행이 경쟁적으로 프라이빗뱅킹(PB) 센터를 만들고 세무상담 등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비용 대비 수익성이 의문스럽다는 점에서다.

권 원장은 최근 "은행의 VIP 서비스가 수익성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PB센터만 만들지 말고 서민이 많이 가는 거점지역에 서민금융상품을 상담하고 지원해주는 점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권 모럴해저드가 가장 심각한 저축은행에는 아예 법을 고쳐 대응키로 했다.

특히 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예금자의 돈을 사금고(私金庫)처럼 여겨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대출하거나 청탁을 받고 대출하는 일이 잦았다.

금융위는 대주주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저축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행위 혐의를 포착하면, 대주주가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이라도 금감원이 직접 검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개정안의 뼈대다. 현재는 대주주에게 서면자료 제출만 요구할 수 있다.

검사에 응하지 않는 대주주에게는 5천만원 이하 과태료를 매기고, 대주주가 저축은행 돈을 유용하는 `대주주 불법대출'이 저질러지면 해당 저축은행뿐 아니라 대주주에게도 과징금을 부과한다. 과징금 규모는 위반 금액의 40% 이하다.

대주주 형사처벌 수위는 `징역 5년 또는 벌금 5천만원 이하'에서 `징역 10년 또는 벌금 5억원 이하'로 높아진다.

금융위 안팎에선 저축은행 대주주 감시를 강화하도록 금감원에 제한적으로 포괄적 계좌추적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전체에 만연한 모럴헤저드를 바로 잡으려는 이런 조치는 대형 비리가 터지고서 나온 사후약방문 성격의 처방이어서 얼마나 결실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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