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집 맡기면 월세만 내면 된다

우리금융이 내달부터 이른바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실상 매입해 관리해주는 `트러스트앤드리스백(Trust and lease back)`을 시행한다.

대상은 1주택 실거주자로 이자를 연체하고 있는 고객들이 대상이다. 우리금융은 이를 위해 우선 1000억원 규모를 주택담보대출 채권 매입에 투입할 방침이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11일 "하우스푸어인 집주인들이 신탁계정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수익증권을 받은 후 그 수익증권을 은행에 주면 빚을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집주인의 자금난을 해소해주기로 했다"며 "사실상 은행이 직접 매입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은 당초 SPC(특수목적법인)나 부동산관리회사를 설립해 집을 직접 매입하는 세일앤드리스백을 실시하려고 했으나 결국 신탁계정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번 방안은 중립적인 관리처분의 역할을 하는 신탁사를 활용해 집주인이 사실상 채무를 유예받고 원래 자기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럴 경우 차주는 10%대 후반의 높은 연체이자 대신 주택담보대출 이자 수준인 연 5% 안팎의 임대료만 내면 된다.

일단 하우스푸어 집주인은 우리은행의 신탁사업단에 집을 맡기고 수익권증서(수익증권)를 발급받는다. 부동산신탁의 권리가 명시된 수익증권을 은행에 주면 은행은 이 집주인의 대출을 현물상환(혹은 현물변제)으로 소멸시켜준다.

빚이 없어진 집주인은 그대로 집에 거주하면서 신탁사에 월세를 내면 신탁사는 이 월세를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수익증권을 갖고 있는 은행이 월세를 배당금으로 받게 되는 셈이다.

결국 집주인은 신탁사업단에 집을 맡기고 월세를 은행에 내면서 계속 거주할 수 있다. 금융권에선 이 같은 `우리금융식 세일앤드리스백`이 집주인의 채무를 이연시키면서 집값이 다시 오르거나 집이 필요없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SPC를 설립하려면 거래비용이 발생하고 세금 문제도 복잡해 사실상 적용이 힘들다"면서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하우스푸어들의 어려움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은행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수익증권이 만기가 됐을 때 집주인이 되사는 바이백 조항(콜옵션)도 조건에 따라 부여할 방침이다. 신탁기간은 3~5년이 검토되고 있다.

이번 방안에선 정부의 국민주택기금이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 혹은 제2금융권의 참여는 배제됐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하우스푸어 대책에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차원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나중에 사업이 활성화될 경우 사모펀드나 연금 등도 참여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상은 우리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샀으나 실직 등으로 대출금을 못갚는 고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우리은행 측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투기적으로 주택을 매입한 고객들까지 집을 매입해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해 대상 심사는 투기지역은 제외하는 등 상당히 엄격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방안은 주택 소유자에게 은행이 특혜를 준다는 지적과 신탁사가 담보주택의 가치를 평가하기 쉽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어 실제 시행을 앞두고 논란은 여전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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