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22~23일 2013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실시한 건국대가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논술고사 지문을 대부분 고교 교과서에서 출제하고 문제도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했을 주제로 한정해 출제했다.
건국대는 22~23일 이틀간 서울 광진구 서울캠퍼스 일대 150여개 고사장에서 인문사회계열 I, II, 자연계열 논술고사를 각각 실시했다.

그동안 교육계와 학부모단체 등에서 지나치게 어려운 대입 논술이 사교육을 유발한다고 지적하는 상황에서 건국대가 논술고사 지문을 고교 교과서에서 출제함에 따라 앞으로 논술고사를 치르는 다른 주요 대학들에도 파급될지 주목된다.

건국대는 22일 오전 치르진 2013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우수자전형의 논술고사 인문사회계열 I 시험에서 ‘정체성’을 주제로 4개 지문 가운데 설문조사표를 제외한 3개 지문이 모두 고교 ‘독서’교과서와 고교 ‘국어’교과서, 고교 ‘문학’교과서에 나오는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등에서 출제됐다.

고교 교과서에서 ‘정체성’을 주제로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읽는 지문을 제시하고 이들 관점을 비교하거나 이를 토대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정체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묻는 문제 등을 출제했다. 특히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의 일부에서 발췌한 지문은 주인공이 교실폭력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다져나가는 과정을 담은 지문이 나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교권붕괴에 대한 경각심과 인식을 정체성 회복 문제와 결부시켰다.

경영대학과 상경계열 학생들이 응시한 인문사회계열II 논술고사에서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박완서의 ‘트럭아저씨’의 주인공 행동과 태도를 고전적 의사결정 이론과 대안모델(주관적 기대효용 이론) 등 두 가지 의사결정 이론으로 설명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수리적 능력을 묻는 두 번째 문제도 게임이론의 한 가지 중요한 예인 브라에스의 역설(Braess paradox) 상황을 상정하고, 주어진 상황을 적절히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이는 지난해 논술 문제에서는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파트리스 보네위츠 저)에 나오는 사회화의 기본 개념인 아비투스(habitus)에 대한 설명과, ‘소비자학 연구’의 명품 브랜드 소비 선호도 분석,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 나오는 과시적 소비, 고교 문학교과서에 나오는 이문구의 ‘유자소전’ 등의 지문을 바탕으로 사회적 행동방식에 대한 문제가 출제된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건국대 논술고사출제위원회는 “논술 과외를 받지 않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한가지 분명한 대명제를 갖고 문제를 출제했다”며 “이를 위해 제시문을 가능하면 교과서에서 택하고, 묻는 문제도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했을 문제로 한정했다”며 “인문사회1에서 정체성을, 인문사회 2에서는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를 제시하였으며 대부분의 지문이 교과서를 벗어나지 않게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정체성과 의사결정이라는 이 두 주제는 학생들이 어떻게 바람직한 정체성 형성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된 것”이라며 “논술과외를 받은 적이 없는 수험생들을 기준으로 문제를 출제하였으며 이러한 논술문제가 사교육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23일 치러진 자연계 논술에서도 3개 문항 모두 고교 생물I, 화학I, 물리I 등 교과서에 발췌 편집한 지문들로 출제됐다. 생물I 교과서에서 습득한 화학적 시냅스의 기본적인 구조 및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신경 전달 과정에 대한 기본 지식과 고교 과정에 소개된 향정신성 약물의 작용 원리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약물의 작용 원리와 생물학적 논리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했다.

또 화학I고교 과정에 나오는 보일의 법칙, 샤를의 법칙, 기체 분자 운동론 등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온도, 압력, 부피가 변화는 과정에서 기체 분자의 운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물리 화학적 지식을 평가하는 문제와, 고교 물리 I에서 다루는 상대속도 및 탄성 충돌의 내용을 통해 두 물체가 충돌 하였을 때 충돌전후의 운동의 변화를 물리적으로 생각해 보는 문제가 출제됐다.

이번 논술고사는 수시 모집 논술우수자전형에 응시한 수험생 1만8,248명을 대상으로 인문계 지원자 9,016명은 22일 오전 인문사회계 I(5,142명)과 오후 인문사회계 II(3,874명), 23일 오전 자연계열 9,230명으로 나눠 각각 시험을 치렀다.

인문사회계 I은 문과대학, 이과대학(지리학과), 정치대학, 글로벌융합대학(자율전공학부-인문계)모집단위에서 실시했으며 지원자 5,142명 가운데 133명 결시, 2.58%의 결시율을 보였으며, 인문사회계II 유형은 상경대학과 경영대학 모집단위에서 실시해 지원자 3,874명 가운데 134명이 결시, 3.45%의 결시율을 보였다. 인문계 전체 결시율은 2.96%로 지난해(6.50%)보다 크게 낮아졌다. 23일 치러진 자연계 논술에서도 지원자 9,230명 가운데 261명이 결시, 2.82%의 낮은 결시율을 보였다.

건국대 논술우수자전형으로 500명을 선발하며 이 가운데 50% 정도를 수능 우선선발로 뽑기로 했다. 평균 경쟁률은 36.50대1을 나타냈다. 논술전형은 논술고사 80%와 학생부 20%를 반영하며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된다.

신설된 논술전형의 수능 우선선발 기준은 인문계열 수능 4개 영역 중 3개 영역의 합이 4등급 이내, 자연계열 수능 4개 영역 중 3개 영역의 합이 5등급 이내 등이다. 수의예과는 언어, 수리, 외국어, 과학탐구 영역 중 3개 영역의 합이 4등급 이내 이다.

논술전형 일반 선발의 수능최저학력기준은 인문계 2개 영역 이상 2등급 이내, 자연계 2개 영역 이상 3등급 이내여야 한다. 수의예과 일반선발 기준은 언어, 수리(가), 외국어, 과학탐구 영역 중 3개영역의 합이 5등급 이내 이다.

논술우수자전형의 최종 합격자는 12월8일(토)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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