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전문가 이정숙씨 조언…가족 간이라도 상대방 입장을 잠깐 고민해 보고 말해야

언제부턴가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당당한 ‘공식 용어’로 쓰이고 있다. 일가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날인 명절에 스트레스라는 말이 붙은 이유가 뭘까. 상당 부분이 사람들 간의 ‘대화’ 때문일 공산이 크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척과 뒤끝 없이 헤어질 수 있는 대화법은 없을까. ‘유쾌한대화연구소’의 이정숙 대표에게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과 적절한 대화법에 대해 들어봤다. 이 대표는 대화법 전문가다.

 

명절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은 부적절한 대화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등 명절 때 만나도 별 트러블 없이 대화가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났을 때 부적절한 대화를 해 가족 간의 심기가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서양권에서는 가족 간이라도 지나치게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간섭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화 규칙을 비교적 명확히 지키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만 가족이니까 다 이해하겠지’ 하는 생각에 본인도 모르게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이정숙 유쾌한대화연구소 대표는 사생활 침해의 대표적인 예로 결혼, 취업 등의 화제를 들었다. 부모 자식 간에 가장 흔하게 오가는 화제이기도 하다. 만나자마자 대뜸 ‘시집 언제 갈 거니?’ ‘취직은 왜 안 하니?’ 같은 식으로 말하며 민감한 부분을 정곡으로 건드리면 마음이 상할 수 있다. 가족 간이라도 ‘내가 이 얘기를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잠깐이라도 고민을 해 보고 나서 말해야 한다는 얘기다.

부모형제 모두 서로를 ‘분신’으로 여겨

말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부모가 결혼을 안 하고 있는 자식을 오랜만에 만나 “너는 왜 결혼을 안 하니? 언제 할 거니?”라고 한다. 부모는 그러면서 ‘걱정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는 걸 잘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자식은 ‘왜 나를 괴롭히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심리까지 헤아려 가면서 이해하기보다는 들리는 말만 가지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너의 결혼 소식을 고대하고 있단다’ 같은 식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은근히 내비치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이 대표는 권했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자매 사이에서 서로를 독립적인 객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해, 자식이나 형제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길 강요하면서 그게 상대가 잘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그뿐 아니라 이 대표는 한국인 특유의 ‘정’에 대한 정의가 세대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윗세대는 ‘서로 부대끼면서 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랫세대는 ‘어려울 때 보이지 않게 돕는 것’이 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명절 때 흔하게 일어나는 갈등으로 ‘고부간의 갈등’이 있다. 우리가 흔히 ‘참을인 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을 들며 권하는 덕목인 ‘인내’는 이럴 때 별 도움이 안된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그보다는 서로 불만 사항과 상황을 최대한 ‘담백’하게 표현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왜 남들처럼 일찍 와서 돕지 않느냐’라고 했을 때, 여기에 화를 내며 반발하거나 혹은 속으로 삭이며 참는 것보다는 ‘이러이러한 사정으로…’라고 담담하게 설명하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다는 말이다.

‘고부간의 갈등’에 인내는 별 도움 안돼

가족 사이라도 오랜만에 만날 때는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서로의 형편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좋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가족 사이라도 오랜만에 만날 때는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서로의 형편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좋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반발하면 대화가 싸움이 되고, 무조건 참으면 화가 쌓여 나중에 엉뚱하게 터질 수 있다. 담담하게 답했는데 여기에 대고 상대가 화를 내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화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답변의 내용을 곱씹어 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는 비단 고부간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도 적용되는 대화법이다.

사실 일반적인 한국인이 어떤 부탁이나 책망을 받았을 때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담담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수사학을 교육하며 토론, 발표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 상대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 대표는 평소에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담담히 표현하는 법을 연습해 두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생각해 놓은 말이 실제로 입에서 쉽게 나오려면 여러 번 반복해 직접 소리 내서 연습해야 한다. 명절을 앞두고는 다음과 같이 연습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질문을 생각한 다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소리 내 반복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취직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에는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 전해 드리지 못해서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식으로 차분하게 답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친지의 사정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를 잘 알아야 좋은 대화가 오간다. 예를 들면, 사촌이 사업이 잘 안돼서 집을 팔았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사촌 앞에서 ‘이번에 내가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둥, ‘이런 시기에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마음이 상하기 십상이다. 명절 전에 일가친척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조심스럽게 파악해 할 말, 안 할 말을 눈치껏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이 대표는 “대가족문화 등 고유의 전통문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서구의 시스템이 그대로 이식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가족간의 갈등상황에 말로 대처하는 데 서투르다”며 “명절대비뿐 아니라 평소에도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의사표현을 하는 법을 연습해 두는 편이 좋다”고 설명했다. 말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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