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색깔이 달라져 간다.
푸르고 푸르던 여름날의 싱싱한 생동은 맑은 하늘 아래서 붉게 물들어간다.
가을이 오고 있다.
이 가을이 오면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소월의 초기 시에 관한 기억이다.

어린 시절 한강이 보이는 원효로 전차종점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전차가 종점에 도착하면 바퀴와 선로가 서로 부딪치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집이 약간씩 흔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밤이면 전차 지붕에 붙어 있는 도르래와 전선이 일으키는 불빛이 창문 안으로 섬광처럼 들어오곤 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나고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을 갔다. 대구에서 중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중학교의 벽돌로 된 교사는 언덕 위에 있었는데 이 건물에는 전선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이 가득 있었고 우리는 언덕 아래 운동장 한 편에 군용 천막을 친 막사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막사 안 바닥은 흙이었고 책상과 의자는 마치 가락국수집처럼 널빤지로 이어져 있어서 네 명이 함께 앉게 되어 있었다.

이 피난지 막사 교실에서 1년을 보내고 2년이 되어가던 여름이었다. 며칠 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운동장은 물이 고여서 진흙 밭으로 변해 있었다. 운동화는 이미 젖어서 바지 밑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첫 시간을 마치자 비가 하늘이 무너진 듯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둘째 시간은 역사시간이었다.

역사 선생님은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던 교수님이셨는데 가족을 북쪽에 두고 혼자 피난을 해서 중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와 교탁 앞에 섰을 때였다.
갑자기 천막 밑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땅에다 그냥 세워놓은 천막이라 운동장에 고인 물이 낮은 곳으로 몰려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교실바닥은 발목까지 물이 찼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교탁위로 올라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우리도 의자 위로 올라앉았다. 선
생님은 수업을 시작하지 않고 멍하니 천막 밖 비오는 광경을 보고 있다가 ‘내가 오늘은 시를 몇 편 낭송해줄게.’ 하면서 비를 보며 소월 시인의 시편들을 암송해주었다.

그 때 선생님은 마치 누구에게 호소라도 하는 듯이 아니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울기라도 할 듯이 가라앉은 목소리에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눌러 잡은 듯이 애절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암송하였다.

한 편을 암송하곤 한참 쉬었다가 또 한편, 모두 몇 편의 시를 암송하였는지 기억은 되지 않지만 교실 안 어린 중학생이었던 우리는 어두컴컴한 천막 안에서 빗소리에 함몰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오히려 의미도 모르면서 무슨 중대한 선언처럼 가슴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시를 암송할 수 있을까하는 놀라움과 함께 삐거덕거리는 의자소리가 날까 조심하며 앉아 있었다.

종소리가 들리자 선생님은 신발을 벗어들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교실을 나갔다.
그 날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 나는 혼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선생님을 생각했다.

북쪽에 우리들만 한 아들과 딸을 두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와 살아가기 위해서 전공이 아닌 역사를 중학교에서 가르쳐야 했던 선생님의 처절한 마음의 쓰라림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이지만 나는 선생님이 암송한 소월의 시가 지닌 애절한 정조를 가슴에 품게 되었고 그리고 소월 시를 처음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이 암송한 시 중에 ‘길’이라는 시의 몇 구절이 입에 남아있었다.

‘어제도 하룻밤 / 나그네 집에 /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었오 // 오늘은 / 또 몇 십리 / 어디로 갈까 // 산으로 올라갈까 / 들로 갈까 /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가오’ 하는 시였다.

나는 다음날 서점에 가서 소월 시집 한 권을 샀다. 내가 처음 사 본 시집이었다.
시집을 사들고 어머니에게 보여주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내가 소월 시집을 샀다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한밤중에 나를 무릎 앞에 앉히고 ‘이제 커가는 구나’ 하고 웃었다.

그 말 속에 자식이 성장해가는 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아버지는 본 것이었겠지만 나는 소월 시를 읽는 동안에 무언가 가슴에 밀려오는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충동이 서서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성적인 논리만이 아닌 감성의 정서적 환기를 통한 내면의 요동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체득하게 하는 확장을 가져온 일이기도 했다.

결국 이 충동의 파장이 바로 인간다운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흔히 독서라고 하면 어떤 지식의 체계를 살펴서 그 맥락을 따라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화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서양 철학사’ 라는 두꺼운 책을 사가지고 들고 다녔다.

그는 4년이 걸려서도 그 책을 독파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면서 결국 철학에 관한 관심을 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적 호기심만 있었지 이 호기심이 그의 정신세계가 나타내는 욕구의 본질이란 것을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과 살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내가 젊었을 때와 지금 아들의 세대와 그 인식의 틀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도 궁금했다.

나는 다시 옛날에 읽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하근찬의 ‘수난이대’를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나 관심을 책과 연관하여 책의 힘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가까운 이들에게 말로 된 충고를 기대하지만,
이 충고의 내용은 보편적이며 정직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기보다 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한정적인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사라지지 않는 ‘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적 호기심이 생겨나면 책을 찾아 읽어가는 습관이야 말로 지적자산을 간직하게 하는 독서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누가 읽어서 좋다고 해서 따라 읽어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이다.
나도 읽어봤다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독서의 깊이를 가질 수 없다.

삶의 길을 잃고 어떻게 이 막막한 벽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에 가장 훌륭한 해결의 길은 바로 사람에 관한 성실한 명상을 담고 있는 책을 골라잡아야 할 것이다.

또 높은 사람다움의 성장을 꿈꾼다면 인간의 고매한 인격적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책들을 골라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 분야에 속하는 몇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관심의 표적이 되는 좋은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마치 좁은 방 안에 누워 벽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에게 방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참다운 인간다운 삶의 창조를 가져오게 하는 계기와 그 성취를 맛보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독서에서 딱 한 가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는 책을 들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글로 만들어진 책을 안고 사는 것은 언어가 담고 있는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큰 집을 짓는 것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풍부한 지식과 몸에 밴 교양은 훌륭한 삶을 세워 가는데 꼭 있어야 하는 재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박동규 교수
박동규 교수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선생 장남으로 1962년 문단에 등단한 이래 한국의 전후소설 특질을 분석적으로 규명하는 평론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시 전문지 ‘심상’ 편집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학 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