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이 드러났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계열분리 명령제는 금융위기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대형 금융기관들에게 먼저 도입하고 국민경제 건전성을 헤칠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규모가 큰 일부 재벌에게도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경제 전체의 건전성 강화와 시스템 리스크 방지라는 관점에서 재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다.

이와 함께 공정거래법 위반 시 처벌 대상을 법인에서 총수 및 임원으로 확대하고 횡령과 배임 등 경제범죄 처벌 기준을 대폭 상향에 대기업 경영진의 경영상 결정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부당 지원, 편법 상속·증여 등에 대한 과세 및 제재 수위를 높여 이런 행위를 자행하는 경제적 유인을 없애겠다는 구상이다.

안 후보측의 재벌개혁안은 계열분리명령제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대선 3후보의 정책중 강도가 가장 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단계별로 장기간 도입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 계열분리 명령제, 국민경제에 영향 금융기관·재벌에 적용 검토

안 후보의 재벌개혁 구상의 핵심 아이디어인 계열분리명령제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에게 자본 확충과 계열분리 등을 요구하는 미국의 금융개혁안(일명 도드 프랭크법)에서 차용됐다.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킬 수 있는 대형은행에 자본금 확충, 계열분리를 명령할 수 있는 것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건전성을 위협하는 금융기관이나 재벌에 계열분리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개혁의 대상을 국민경제에서 영향력이 큰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으로 국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벌개혁의 핵심수단으로 도입하기로 한 계열분리 명령제는 2단계에 걸쳐 적용된다. 1단계는 대형 금융기관에 도입된다.

금융건전성 감독기구에서 대상 금융기관을 SIFI에 해당하는 금융기관의 기준을 결정해 적용 시기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일반 제조업체 등에 계열분리 명령제를 적용하는 2단계 조치 실행 여부는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에서 판단할 계획이다.

재벌개혁위원회가 각 재벌 그룹으로부터 기존 순환출자분에 대한 해소 방안을 제출받고 개혁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계열분리를 명령한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등 일부 거대 재벌 등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재벌들의 선단식 계열사 지배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강화하는 조치도 실행된다.

지주회사 설립요건 중 부채비율 기준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기로 했다. 또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주식 보유 비율 기준은 현행 각각 20%와 40%에서 30%와 50%로 높일 계획이다.

아울러 계열사의 지주회사에 대한 출자를 제한하고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 대표소송제 도입,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등의 조치도 취하기로 했다.

다만 규모가 크지 않은 중견 대기업과 중소 기업은 지주회사 설립요건 강화 등 지배구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같은 조치들이 중견·중소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고, 불필요한 시장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장하성 교수는 “2단계 개혁에 따라 계열분리 명령제가 도입이 된다고 해도 실제로 적용되는 것은 일부 재벌에 국한될 것”이라며 “경제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총수·대기업 임원에 불공정행위 책임 물을 것”

이번 재벌개혁 공약의 또 다른 특징인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는 점이다.

담합과 하청업체 쥐어짜기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이를 지시한 총수와 임원들도 과징금 부과 처벌을 받도록 했다. 현재는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대규모 유통법 등의 위반 사건에 대해 법인만을 과징금 부과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총수와 임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공정거래관련법 위반시 집단소송제 또는 국가소송제 도입해서 기업과 총수들에게 민사적인 책임도 지게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조치다.

횡령과 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구형 형량 강화로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게 만든 것도 경영진의 재량적인 판단으로 불법행위가 일어날 여지가 없도록 만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캠프측 한 관계자는 “미국 등 외국 사례를 보면 담합 사건으로 가담했다가 경영진이 실형을 사는 사례가 다수 있다”면서

“과징금 부과 처벌이 총수와 임원 개인에게 이뤄지게 된다면 담합과 납품사 쥐어짜기 등 불공정행위를 지시하는 경영진의 책임이 크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감몰아주기와 편법 상속·증여에 따른 처벌과 과세 범위가 대폭 늘어난다. 특히 일감몰아주기의 경우 과징금과 과세 규모가 현재보다 두 세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정거래법 상 부당지원행위 처벌 대상은 일감을 몰아주는 회사로 국한됐다. 반대로 세법상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증여세는 지원을 받은 대주주 친족 소유 회사로 국한됐다.

이에 비해 안 후보측은 법을 개정해 계열사 부당지원 및 일감 몰아주기의 경우 수혜기업의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얻은 지배주주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공정거래법과 증여세 적용 대상을 일감을 몰아주는 기업과 혜택을 받는 기업 모두에게 쌍방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캠프 측 관계자는 “현재 일감몰아주기 제재 수위가 너무 낮아서 공정위와 국세청에게 처벌을 받거나 과세조치를 당해도 해당 기업은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이 발생한다”면서

“처벌 및 과세 범위를 넓혀서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없애야 이런 불공정 행위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게 공약에 깔린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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