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4대강도 일자리를 늘리지는 못했습니다. 대기업은 해외에 공장을 세웠고, 4대강에 몇십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일자리가 과연 얼마나 만들어졌습니까? 그렇게 지난 5년간 허송세월 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문제는 점점 더 심각한 난제가 되었습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21일 고용·노동 정책을 발표하면서 대기업과 정치권을 질타했다. 대기업을 키워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구상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강도높은 어구로 표현한 것이다. 비정규직을 통해 노동 비용을 줄여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대기업이 ‘노동과 빈곤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는 듯 했다.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민적 합의기구’를 통해 사회통합적 일자리 경제를 추진하겠다는 발언도 이런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질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문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으로 하여금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지키게 하고 노동시간 단축 등 복잡한 논의를 이끌어갈 큰 틀로써 사회적 합의라는 압력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 국민합의기구 통해 기업들 일자리 나누기

안 후보가 도입하기로 한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민적합의기구는 기업과 노동계, 정부 등 경제 주체 대표와 정파를 초월한 정치권이 모두 참여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회의체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노동계, 사용자, 정부 등이 참여해 발족한 노사정위원회와 비교하면 대통령이 직접 기구를 주관한다는 측면에서 위상과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합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모델은 유럽의 사례를 따 온 것이다. 네덜란드는 1982년 11월 소도시 바세나르에서 노·사·정이 임금 인상 억제(노), 노동시간 단축 및 일자리 공유(사), 감세(정) 등을 담은 '바세나르 협약‘을 맺으면서 마이너스 성장률에서 벗어나게 됐다.

안 후보는 우선 이 합의기구 안에서 기업들이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도록 합의를 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안 후보가 재벌개혁을 위해 설치하겠다고 밝힌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는 대기업을 압박하는 장치로 사용될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혁 등과 일자리 문제 등을 포함해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합의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캠프의 김성식 선거본부장은 한 방송에서 “1단계의 조치에 재벌이 보다 협력적으로 나오고, 일자리도 만들고 중소기업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정말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 등의 과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정치력과 여론을 통해 촉구할 것”이라며 “그것조차 안 할 경우에는 2단계 조치로 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정부가 직접 양질의 일자리 만든다

안 후보의 일자리 정책은 일자리 늘리기 뿐 아니라 기존의 일자리들을 좋은 일자리로 바꾸겠다는 계획도 포함된 개념이다. 안 후보는 이날 “저는 지금 몇십만개 몇백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리지는 않겠다”며 “(국민들은)몇 달간 몇십만원 주고 끝나는 그런 일자리, 휴지 줍고 풀 뽑는 그런 일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우선 안 후보가 내세운 좋은 일자리 만들기의 핵심은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 규정이다. 안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이날 “고용 전반에 걸쳐 차별을 금지하고 그 차별 금지를 위반했을 때 징벌적 배상을 부과하는 고용 평등 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고용평등기본법을 통해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과도하게 늘리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자본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 투자 세액공제를 고용 중심으로 바꿔 대기업들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대기업의 경우 설비 투자를 이유로 연 수조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를 설비 투자가 아닌 인건비 등 고용 관련 투자로 바꿔 대기업의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장하성 교수는 “삼성전자는 실효세율이 12%에 불과하다”며 “투자 세액 공제는 장치산업에 많은데 세액 공제는 크게 받지만 실제 고용 효과는 적다”고 지적했다.

또 영세사업체 일자리의 경우 재정 투입을 통해 일자리 질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현재 운용중인 각종 고용 관련 기금 등을 통합하고 일반 회계 예산 확대를 통해 2조~3조원 가량을 마련해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의 노동·복지 여건을 개선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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