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발언 악몽에 "또 판결내용 숙지못했나" 불만기류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1일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지만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측이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하면서 1962년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 헌납 과정과 강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박근혜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에 대해 "몇가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며 적극 해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일장학회가 5ㆍ16장학회를 거쳐 정수장학회가 돼가는 과정과 관련한 그간 야당의 주장을 대선을 앞둔 '정치공세'로 일축한데 이어 '강압성' 부분과 관련한 발언을 번복하면서 "강탈 사실을 왜곡했다"는 야권의 반발을 샀다.

박 후보는 이날 정수장학회가 야당의 주장처럼 박정희 정권의 일방적 강탈에 의해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 강조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당시 김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은 분이었다"며 "4ㆍ19때부터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고 그후 5ㆍ16때 부패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받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 과정에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헌납의 뜻을 밝혔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등을 헌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씨가 헌납한 규모는 현재의 부산일보와 MBC 규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서 "부산일보는 당시 자본이 980배나 잠식돼 자력회생이 힘들 정도의 부실기업이었고, MBC 역시 라디오 방송만 하던 작은 규모였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또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김씨의 헌납 재산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독지가, 해외동포 등 많은 분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추가 브리핑에서 "1962년 5월3일 연세대 스코필드 박사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찾아와 25만환을 내놨는데 이것이 `종자돈'이돼 장학회 설립 결정이 내려졌고 이후 해외교포와 국민 성금이 답지했다"고 전했다.

1962∼1979년 조성된 11억3천600여만원의 장학금 가운데 김씨의 헌납 규모는 5.8%인 6천700여만원 정도라는게 이 단장의 설명이다.

박 후보는 이날 장학회 헌납의 강압성 여부에 대한 법원 판결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발언을 번복,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1962년 재산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 재판 과정에서 문화방송과 부산일보의 주식 등을 국가에 헌납한 뒤 석방됐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김씨의 유족이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ㆍ16장학회에 주식을 증여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강탈을 인정한 것이다.

그 이유로는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 연행된 김씨 회사 직원들에게 권총을 차고 접근해 "군이 목숨걸고 혁명을 했으니 국민 재산은 우리 것"이라고 겁을 준 점 ▲중앙정보부 부산지부 수사과장이 김씨 측근에게 "살고 싶으면 재산을 헌납하라"고 강요한 점 ▲군 검찰이 김씨를 구속기소했다가 기부승낙서에 날인하자 공소를 취소한 점이 꼽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여야 원천무효가 된다"며 "김씨의 주식증여 의사표시는 그런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워 무효는 아니고 다만 취소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는 이날 회견에서 강압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법원이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그러나 이것이 `정수장학회 헌납 과정에서 강압이 없었다'고 단정한 것처럼 해석되자 기자회견 말미에 다시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정정했다.

그는 "제가 아까 강압이 없었다고 얘기했나요. (그렇다면) 제가 잘못 말한 것 같다"면서 "법원에서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패소판결을 내린 걸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박 후보의 기자회견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입장 표명을 다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핵심 관계자는 "오늘 회견을 통해 박 후보가 야당이 정수장학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과 장학회 이름 변경을 포함해 정수장학회의 대변혁, 대변화를 요구했다고 본다"며 "박 후보가 자신의 권한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 했다"고 말했다.

다른 친박 관계자도 "모든 장학재단이 설립취지에 따라 움직이는 게 당연하지만, 정수장학회는 이제 설립자의 뜻에 해당하는 일을 다 했고 너무 정쟁에 휘말리니까 제 갈길을 가라고 놓아준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두 개의 판결' 때처럼 박 후보가 이번에도 법원의 판결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채 기자회견에 임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법원판결이 그렇게 났지만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는 뉘앙스 같잖냐"며 `국민 눈높이'에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법조인 출신의 또다른 의원은 "왜 그런 식으로 말했을까. 차라리 말을 않았었다면 어땠을까. 완전히 거꾸로 가는 방향 아니었느냐"며 "누가 그렇게 `코치'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측근들도 그의 발언 내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가 주변 인사들과 논의를 통해 발언을 조율하는 과정이 없이 혼자 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중앙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누구와 상의를 어떻게 했는지 통 모르겠다. 혼자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 핵심 관계자는 "박 후보가 바쁜 일정에서 어떻게 자료를 찾고 했겠나. 주변에 상의하고 의견수렴을 충분히 했다"고 전했고, 다른 관계자도 "수많은 보고서가 들어갔으며 당내 여러 의견을 이런 저런 경로로 다 들은 뒤 본인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