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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도 아닌 친인척을 고객만족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고 수시로 전화해 무조건 높은 점수를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고객만족도 뿐아니라 수치조작을 통해 실적 자체를 20∼30% 부풀리는 행위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우리 기관 뿐아니라 상당수 공공기관 곳곳에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5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며 이렇게 털어놨다.

◇ '가짜고객' 관리로 높은 점수

여의도의 한 금융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A씨는 전 팀원과 모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공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워크숍'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이 회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공공기관이 고객만족도 조사를 앞두고 마련한 로비성 여행이었다.

공공기관이 고객만족도 점수에 연연하다 보니 이처럼 국민세금이 낭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해당 기관 관계자는 "점수가 나쁘면 사장이 퇴진해야 하니 경영평가와 고객만족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고객만족도는 완전한 사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평가 때마다 고객에게 연락해 최고점수를 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나마도 '진짜 고객'이 아닌 경우가 많다"면서 "당장 내가 관리하는 고객도 친인척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또 친인척이 아니더라도 평소 `관리'를 해 온 사람들이 대체로 조사대상이 되는 만큼 당연히 좋은 점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고점수를 부탁하는 기관의 요청을 해당 고객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거절할 경우 거래관계가가 불편해지기 때문에 당연히 최고점수를 주게 된다.

이 관계자는 "상당수의 공공기관들이 고객만족도에서 9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얻는다"면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만족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높은 점수가 나오는 것은 조사결과가 조작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뮤지컬 공연에 초대하기도 이러한 왜곡 및 조작행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어느 공공기관 관계자는 "A공사는 평가철만 다가오면 거의 전제 직원을 동원해 육체노동을 겸한 대민봉사를 한다"고 말했다.

해당기관은 고객만족도 조사와 상관없다고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평소에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평가 직전에 봉사를 하는 기관에게 나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우리 기관도 고객만족도 조사 직전에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준다"면서 "이런 행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기관들이 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형 기관 관계자는 "관련 기업의 고객만족도 대상자들을 음악회나 뮤지컬 같은 공연에 초대하느라 300만∼400만 원씩 지출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며 "잠재적 조사대상자에 대한 관리가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기관 관계자는 "선물을 갖고 가서 좋은 점수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 달 전부터 고객만족도 잘 받아오라고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면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어 매우 바쁜 상황인데도 모두 밖으로 나가서 뛰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평소에 잘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다고 해서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해당 고객에게 선물을 사들고 찾아가서 부탁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기관들은 고객만족도를 위한 전담팀까지 꾸린다"고 전했다.

한편, 작년에는 서울메트로가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일반 승객이 아닌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 등이 대신 설문에 응하게 했다가 적발됐고, 2009년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객만족도 설문조사 결과 중 부정적인 응답을 걸러내 논란이 됐다.

◇실적 자체를 조작하기도

고객만족도 뿐 아니라 실적을 부풀리는 행위도 일어나고 있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상관이 특정 수치를 높은 수준으로 수정하라는 지시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상관은 지나가는 말로 `융통성있게 하라'고 한마디 하면 실무진들은 알아서 실적을 부풀린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계사나 교수 등 평가단이 일선 업무를 상세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실무진들이 실적조작을 하는 것을 적발하기 어렵다"면서 "실적은 기관장 뿐아니라 직원들의 상여금을 좌우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만한 '인센티브'가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적지 않은 기관들이 이런 조작행위를 한다"면서 "이런 조작행위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느낌을 받을 정도"라고 전했다.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단기적 지표에 의해 경영평가가 이뤄지니 이런 일이 생긴다"면서 "공공기관들이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일보다는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올인하니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 평가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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