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꼼짝마..  신종 탈세 신고꾼, 아줌마 세파라치

국세청이 올해부터 시행한 차명계좌 신고포상금제도 때문에 나타난 현상중의 하나가 세파라치다. 현재 세부 시행령을 마련 중인데 신고 1건(추징액 1000만원 이상)당 50만원 정도로 포상금을 책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문 세파라치 중 일부는 몰래카메라 판매점을 차려놓고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몰래카메라 전문점에서 만난 주부 이모(51)씨는 장비가“인터넷 쇼핑몰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캠코더를 구입하면 사용법과 적발 요령을 알려주기 때문에 구입한다”며 그 자리에서 현금 65만원을 주고 캠코더를 구입했다.

결국 시중가보다 비싼 캠코더 가격에 교육비가 포함돼 있는 셈이다. 이 업체 사장 정모(66)씨는 “교육생 대부분이 용돈벌이를 하려는 평범한 주부”라며 “캠코더 1대를 팔면 15만~20만원 정도가 남는다”고 했다.

불법 사실 신고로 포상금을 노리는 이른바 ‘파파라치’는 그동안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 ‘쓰파라치’(쓰레기 무단투기), ‘성파라치’(불법 성매매), ‘식파라치’(불법 유해식품), ‘청파라치’(미성년자에게 술·담배 판매), ‘학파라치’(불법 학원영업) 등이 성행했다. 차명계좌 신고포상제가 도입된 요즘엔 세파라치가 가장 많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일부 전문 세파라치는 한쪽에선 교육생들에게 몰래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성형외과 원장들을 상대로 ‘세파라치에게 당하지 않는 법’을 강의하기도 한다. 한 세파라치는 “최근 강남 지역 성형외과 원장 15명에게 돈을 받고 세파라치에게 당하지 않는 법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세원정보과 김길용 계장은 “세파라치들을 양산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사업자들의 탈세를 막는다는 공익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20대 중반의 여성 A씨는 지난달 중순, 부산 서면에 위치한 B성형외과를 찾았다. 그는 면접을 앞두고 코를 세우는 성형을 하고 싶다며 비용을 문의했다.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생각보다 수술 비용이 비싸네요."(A씨) "현금으로 하시면 15% 정도 깎아드릴게요."(병원 코디네이터) "그럼 계약금만 먼저 걸어도 될까요?"(A씨)

코디네이터와 10여분간 면담을 한 뒤 병원문을 나서는 A씨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이 흘렀다. 그의 손에는 병원 계좌 번호와 이름이 적힌 쪽지가 들려 있었다.

며칠 뒤 B성형외과는 세무 당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환자로부터 차명계좌로 돈을 입금받은 이유와 계좌의 정확한 사용처 등을 묻는 전화였다. 병원을 나선 직후 계좌로 5만원의 계약금을 송금한 A씨가 계좌 주인이 병원 원장이 아니라며 곧장 신고를 한 것이다. B성형외과는 입금 흔적이 뚜렷이 남았던 탓에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고, 세금 탈루 등을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차명 계좌의 존재를 들키고 말았다.

탈세를 신고하고 세무당국으로부터 포상금을 받아내는 이른바 '세파라치'의 공격으로 서면 일대 성형외과들은 초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모 성형외과 관계자는 "서면 일대 20여 곳이 최근 같은 방법으로 이른바 세파라치에게 신고를 당해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며 "사실상 쑥대밭이 됐지만 외부로 알려질까 끙끙 앓고만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서면에는 성형외과 50여곳이 영업 중이다. 또 다른 성형외과 의사는 "울산의 경우 이미 2~3개월 전에 7~8곳의 성형외과가 같은 식의 신고에 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술비 할인을 조건으로 현금 거래를 제안하는 곳이 많다는 점을 알고 세파라치 전문 양성 학원에서 성형외과를 집중 타깃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부산 일대에 파다하다. 세무당국은 탈세 제보자에게 최대 1억원까지 지급하고 있다.

세파라치들은 쌍커풀이나 코 수술 등을 하겠다며 예비 환자로 가장해 접근하다 보니 성형외과 의원들은 대부분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부산 국세청 등 세무당국은 "납세자 보호 차원에서 조사 내용에 대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국세청은 올 상반기 수술비 15% 할인을 조건으로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고 병원 전산자료를 삭제·변조하는 수법으로 수입 195억원을 누락한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를 적발한 바 있다. 이 성형외과는 탈루 소득에 대해 추징금 80억원, 현금영수증 미발행 금액 304억원에 대한 과태료 152억원 등 핵폭탄급 세금을 물었다.

경찰에 따르면 세파라치는  "현금 내겠다"며 탈세 유도한 뒤 신고하는등 신종 稅파라치 등장에 병원들이 곤혹을 치루고 있다고 했다.

성형외과 병원이 줄지어 늘어선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주변에는 유독 성형외과가 많다. 탈세 현장을 신고하려는 세파라치가 늘어나면서 이 지역 병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현금으로 계산한다며 수술비를 깎아달라고 하거나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계좌 외에 다른 계좌로 송금하겠다는 손님이 있으면 세(稅)파라치로 의심하여야 한다고 했다.”

W 파파라치 학원 김모 대표는 “세파라치들은 (탈세 증명을 위해) 손목시계나 볼펜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소지하고 있다”며 “몰래카메라 탐지기를 구비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한국의 성형메카인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 병원들의 탈세현장을 신고해 한몫 챙기려는 세파라치와 이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는 병원들 간 치열한 생존경쟁이 한창이다.

세파라치들이 전국을 순례하듯 각 지역 병원 밀집지역을 돌며 환자로 위장, “현금을 낼테니 수술비를 깎아달라”며 현금 거래를 유도하고 탈세 현장을 몰래카메라 등으로 찍어 국세청에 신고하는 건수가 한 달 수십건에 달한다.

세파라치들은 지난 7월에 서울과 분당, 수원 등 수도권 일대, 지난 9월과 10월에는 부산과 울산 등 남부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뒤 다시 서울로 ‘회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파라치제도는 2010년 4월 병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병원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세파라치 양성 학원 대표나 세무사 등 전문가를 초빙해 ‘비밀과외’를 받는 소모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세파라치들은 강남 성형외과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1년 새 무려 100곳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전문 세파라치의 정보도 노출되어 있다. 강남 일대에는 30대로 보이는 부부 한 쌍과 20대 미혼 남녀 한 쌍, 주부와 대학생이 포함된 6인조 등 5~6개 팀의 세파라치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은 우선 쌍꺼풀 수술이나 코를 세우는 성형을 하고 싶다며 성형외과를 찾는다. 상담 코디네이터와 상담하고 수술 일정을 잡는 방식은 일반 손님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작업에 들어가는 건 상담을 끝낸 뒤 수술비를 조율하는 시점. 세파라치들은 “현금으로 낼 테니 수술비를 깎아달라”며 “병원이 알려준 은행은 이용하지 않으니 (계좌이체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다른 은행의 계좌를 달라”고 요구한다. 병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법인 은행 외 다른 계좌를 알려주면 계약금을 보낸 뒤 계좌 주인이 병원 원장이 아니라며 곧장 신고한다.

국세청은 병원들이 사업용 계좌를 사용하지 않고, 차명 계좌를 사용하면 소득 신고를 누락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병원도 입금 흔적이 뚜렷이 남아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세무 당국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조사를 받은 성형외과가 강남 일대에서 100곳이 넘는다.

대한성형외과 의사회에 자문을 하는 허태현 세무사는 “환자를 가장해 현금영수증 미발행을 유도하면 이에 당하지 않을 성형외과가 거의 없다”며 “세파라치의 공격을 당한 성형외과 원장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문의전화가 한 달에 40~50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해 국세청에 신고된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1403건에 불과하던 신고건수는 지난해 1864건으로 32% 늘었다. 올해도 지난 10월까지 1670건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업계에서는 현금 거래가 많은 성형외과나 치과들이 탈세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점을 노려 세파라치 전문 양성학원에서 이들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금영수증 의무제를 위반한 사업자를 신고할 경우 신고자는 현금영수증 미발행액의 20%를 포상금으로 가져갈 수 있다.

강남세무서 조사과 관계자는 “동일인이 여러 성형외과를 돌아다니면서 병원들이 차명 계좌로 돈을 입금받아 세금을 탈루했다고 신고하는 사례가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늘었다”며 “한 달에 수십건씩 세파라치들의 신고가 접수된다”고 말했다.

이에 병원들도 오히려 신고 당사자인 세파라치 초빙해 그들의 수법에 당하지 않으려고 방어책 마련하는 병원들도 많아지고 있다.

‘창’이 있으면 ‘방패’도 있는 법. 세파라치들의 기승에 병원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세무전문가는 물론 자신들을 공격하거나 공격 노하우를 전수하던 파파라치 학원 대표와 현직 세파라치까지 초빙, 환자를 가장한 세파라치의 다양한 공격을 막을 기술(?)을 배우는 소모임을 갖고 있다.

이른 모임엔 병원장도 참석하지만 주로 병원 사무장들이 모인다. 진료시간이 끝난 뒤 병원으로 초빙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심 오피스텔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4시간이나 8시간 집중 강의를 듣는 방식이다. 강의료는 40만~50만원이다. 교재를 만들어 강의 참석자에게만 5만원에 판매하는 곳도 있다.

강남의 한 파파라치 학원 대표는 “남의 이목을 의식해 영업시간 이후 자신의 병원으로 학원 관계자를 따로 불러 수업을 받기도 한다”며 “세파라치들이 몰카를 찍는 다는 사실에 100만원대인 몰래카메라 탐지기를 설치하는 성형외과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알려진 서울시내 파파라치 학원은 6곳. 하지만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1 대 1 맞춤 교육’을 하는 개인 교습 강사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세파라치의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과 동시에 병원과 학원 등을 대상으로 세파라치의 공격을 막는 법도 가르치고 있다.

세파라치의 활동이 급증하면서 가장 바빠진 곳은 강남·서초·역삼 등 성형외과가 많은 강남 일대 세무서 조사과이다. 한 달 내내 세파라치의 신고 접수 업무만 처리하는 별도 팀도 있을 정도다.

세무서 조사과 관계자들은 성형외과에서 정상 계좌가 아닌 차명계좌를 사용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병원을 방문, 조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계좌의 몇 년치 거래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강남세무서 조사과 관계자는 “신고한 사람에게 조사 결과를 통보해줘야 하는데 차명계좌의 현금 입출금 내역을 일일이 다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며 “가뜩이나 정규 업무가 많은데 신고 한 건이 들어오면 조사관 한 명이 며칠씩 이를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이만저만 머리 아픈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강남 세무서에 접수되는 세파라치들의 신고 건수만도 한 달에 수십건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신고를 했다 하더라도 포상금을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서초세무서 관계자는 “세파라치들이 일부러 차명계좌 사용을 유도하는 등 무리한 신고가 대부분”이라며 대다수의 병원들이 선의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포상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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