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당선인, 새누리당 “본인이 알아서 생존"

연일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때리기가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이 후보자는 그동안 야당과 언론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자세히 해명하겠다"고 누누히 밝혀 왔지만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청문회에서 후보자는 위장전입, 관용차로 딸 출근 시켜 주기, 예비관용차를 이용한 차량 홀짝제 비켜 가기 등 명백히 사실로 드러난 잘못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과거 행적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의원들이 지켜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껍질을 벗겨야 속내가 들어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의혹들에 대해선 내 탓이 아닌 '남 탓' '관례'를 들며 이를 피해 갔다.

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는 많다. 그러나 그가 헌법재판관 재직 시절 특정업무경비를 자신의 주머닛돈 쌈짓돈 쓰듯 했다는 유용 의혹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야당 의원들의 자료에 의하면 헌법재판소가 거래하는 신한은행 지점의 이 후보자 개인 계좌에는 매달 200만~500만 원씩, 6년 동안 모두 2억 5천여만 원의 특정업무경비가 입금됐다. 특정업무경비는 각 기관의 수사·감사·예산 및 이에 준하는 특정업무 수행에 사용하기 위해 지급하는 경비다. 사적인 용도로 쓴 사실이 입증되면 공금 횡령으로 볼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그는 이번 청문에에 증빙자료 제출요구에도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속 시원한 해명도 하지 못했다.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을 보면 이 후보자는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기관리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가 인정한 것만봐도 도덕적인 문제를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과거 판결에 비추어 소수자보다 정치적 다수자의 의견과 재산권을 지키는 편에 섰다는 지적이 많다.

이로 인해 그가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데 적임자인지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고 한다. 그는 청문회 인사말에서 "헌재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헌법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그로 인해 헌재 위상은 많이 추락했다. 추락된 헌재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은 스스로에게 '나 자신이 적격자인지' 자문해 보기를 청해본다.

이처럼 인사 청문회가 난타전이 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은 21일부터 시작된 국회인사청문회에 나서는 이동흡(62·사법연수원 5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 “알아서 생존하라”는 방침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도 당선인 측과 이 같은 방침을 사실상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회에서 스스로 살아오면 받아주지만 무리하게 방어하거나 보호해서 여론의 역풍을 자초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당도 이 후보자를 엄호하거나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이 같은 당 수뇌부의 입장을 확인했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 관계자도 최근 한 사석에서 “후보자 본인이 청문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면서 “본인이 어떻게 방어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에 따라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당선인 측은 물론 당내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감지된다. 새누리당은 특히 이 후보자에 대한 낙마를 전제로 한 야권의 무차별 폭로전은 경계하고 있다.

김기현 원내수석 부대표는 이날 CBS라디오에 나와 “(야권은) 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미리 낙마시킨다고 전제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 폭로해서 거기에 대해서 인격적 모욕을 가하는 형태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선인 측과 새누리당은 이날 시작되는 국회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위장전입부터 장남의 증여세 탈루, 삼성 협찬 지시, 부인 동반 해외출장, ‘항공권 깡’ 등 이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이 후보자 본인이 충분히 소명해 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당선인 측과 새누리당의 이 같은 방침은 정부조직개편안의 1월 임시국회 처리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과 조각, 청와대 조직개편 등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격돌할 경우 향후 총리 인선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등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야권이 이 후보자 지명을 ‘박근혜 당선인 1호 인사’라고 부각시킨 데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 과정에 박 당선인의 의중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됐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앞서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3일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박 당선인 측과 조율을 거쳐 지명했다”고 했으며, 박 당선인 측의 박선규 대변인도 “청와대와 협의한 인선”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반대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헌재소장 공백사태가 벌어지는 등 어떤 상황이라도 후폭풍은 불가피하고 이런 상황이 박 당선인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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