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후보 자신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때다.

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대형 인사이자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정부의 첫 인사라고 평가받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가 이틀에 걸쳐 열렸다.

청문회에서 야당은 일찌감치 이 후보자의 지나친 보수 성향을 거론하며 부적격이라고 반발했는데, 그것이 발단이 돼 뜻밖에 그의 품성과 자질 문제로 청문회의 본질이 바뀌어 버렸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이틀간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던 2006~2012년 월평균 400만원씩 지급된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통장에 넣어 사적(私的)으로 썼다는 의혹을 반박할 증빙 자료를 제시하거나 해명하지 못했다. 특정업무경비는 재판 자료 수집 같은 공적(公的) 용도에만 쓰도록 돼 있다.

그는 또 헌법재판관 6년 동안 예금과 지출을 합한 금액이 수입 액수보다 2억6000만원이나 많은 이유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재판관 시절 9번 해외 출장을 나가면서 5번 부인을 동반한 것과 관용차로 출근하면서 딸을 태워 다닌 것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했다.

그동안 숱한 의혹이 제기됐던 이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해 모든 오해를 불식시키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강하게 부인했을 뿐 충분히 해명하지 못함으로써 그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이런 과거 행동이 큰 비리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도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된 후 자신이 몸담았던 헌재 쪽에서 흘러나온 여러 이야기를 듣고 공인(公人)으로서 또 국민의 권리와 헌법을 지킬 소명(召命)을 지닌 헌재소장의 직무를 감당하기에는 주변으로 부터 인망(人望)을 너무 얻지 못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실례로 미국에서는 연방대법관 후보가 대학에 다닐 때 친구들과 대마초를 한 모금 피운 사실이 드러나 후보로 지명된 지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한 일도 있을 정도로 자질에대한 투명성을 요구한다. 그런 뜻에서 이 후보자는 자신에게 좀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이 후보자는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 질서를 강조하는 판결 성향을 보여 왔다. 안정을 중시한 그의 법률관은 결코 그의 허물이 아니며 그것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는 이 후보자와 같은 법률관을 지닌 훌륭한 법관이 많이 있기에 특별히 주목받을 이유는 없다.

청문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논란이 되었던 점은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재임 6년 동안 3억2천여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현금으로 받아 개인계좌에 넣고 이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부상했다.

이에 증인으로 나선 헌재 김혜영 사무관이 특경비를 개인 계좌에 입금한 것과 사용내역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이제까지의 관행이었지만 그것은 규정위반이었다고 시인했다. 이 후보자는 모든 통장을 제출한 것으로 스스로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재산 증가 등과 관련해 의혹만 커졌다.

게다가 이 후보자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언론과 야당에 제보한 사람들은 과거 이 후보자와 함께 근무했던 법원이나 헌재 직원이 대부분이다. 의혹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 후보자의 평소 자기관리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청문회에서 드러난 문제는 모두 본인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청문회는 공직 후보자의 주장과 진정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 공직 수행 능력을 엄정하게 따져보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이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언급한 대로 “헌재는 국민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소장에겐 엄청난 국가적 사명이 있다.” 그런 자리에 앉으려면 성인군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반 공무원보다 한층 높은 윤리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200년 역사에서 연방대법관·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148명 가운데 대법원장 후보 1명을 포함, 27명이 중도 탈락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가 낙마(落馬)하면 이를 그 후보자를 임명한 정권의 인사 실패와 동일시하며 정치 공세를 펴는 건 우리 정치의 낡은 폐습이다. 우리도 이제는 여론 비판이나 국회 인준 거부로 공직 후보자가 중도 하차하는 걸 민주국가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인물 검증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여당이 야당의 반대와 국민 여론을 거슬러가면서 국회 인준 표결을 밀어붙이면 이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임명된 상처투성이 헌재소장이 이끄는 헌재 판결에 대해 국민 신뢰가 어떨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이 후보자가 스스로 판단해 진퇴를 결정할 순간이 왔다. 그것이야 말로 그를 추천한 임기말의 이명박 정부와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만들어진 자리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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