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이동흡…“상대 결정에 따랐다”

법재판소장 후보의 도덕성 논란이 제기돼는 상황에서 국회 인준이 미뤄지고 있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처리를 두고 신구 정권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 후보자가 사퇴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이 이 후보자 거취 결정을 떠넘기는 사이 헌재소장의 공백은 길어지고 있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24일 국회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지 열흘 가까이 지나도록 함구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최근 ‘사퇴 관련 보도가 사실이냐’는 기자의 문자메시지 질문에 대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당초 지난달 3일 청와대는 이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과 조율했다”고 밝혔다.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도 “양측이 조율해 지명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 의중이 실린 인사라는 점을 양쪽에서 모두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양측의 말은 이 후보자 낙마 기류가 짙어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박 당선인 측은 “인사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가진 고유 권한”이라며 이 후보자와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이동흡은 청와대가 지명한 인사지, 박 당선인이 지명한 게 아닌데 왜 우리한테 물어보느냐”며 “이동흡 이름도 잊어버렸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선인은 청와대 인사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라며 “이 후보자를 지명한 청와대를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청와대기 때문에 거취도 청와대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인선의 책임은 박 당선인 쪽에 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사실 박 당선인 쪽과 조율한 것이고 그쪽 의견이 반영된 인사 아니냐”고 밝혔다.

청와대가 나서서 잘못된 인사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취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는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려 했지만, 박 당선인 측에서 이동흡 후보자를 지명했다’는 말까지도 나오면서 진실게임 양상도 벌어졌다.

최초 발표에서는 조율했다고 하다가 실패한 인사가 되자 서로 상대방 결정을 따랐을 뿐이라고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이다. 당장 청와대도 급하게 정리할 것 없다는 기류고, 박 당선인은 결정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헌재소장 공백은 장기화될 것 같다.

그러나 헌재소장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하는 것만이 새정부 출범을 위해서라도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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