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현대자동차의 대형 전시장이 들어설 서울 강남 도산대로. ‘수입차의 성지’로 꼽히며 입주 경쟁이 치열한 이 자리에 현대차는 어떻게 대형 건물을 통째로 확보할 수 있었을까.

원래 이 건물은 일본 닛산의 딜러였던 SS모터스가 인피니티(닛산의 럭셔리 브랜드) 라인업을 판매하던 전시장이었다.

SS모터스는 한때 인피니티 국내 판매량의 40%를 담당하던 대형 딜러였지만, 최근 줄어드는 시장 점유율을 감당할 수 없어 딜러 권한을 자진 반납했다.

승승장구하던 SS모터스가 스스로 사업을 접은 사건은 수입차 딜러사업이 더 이상 누구에게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입차 시장이 연간 15만대 규모까지 늘어나면서 수입차 유통의 뿌리를 구성하는 딜러들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판매량이 많은 독일 브랜드에는 대기업·중견기업을 비롯해 수많은 딜러들이 포진한 반면, 인기가 낮은 미국·일본·프랑스 자동차 업체에는 소수의 딜러만이 판매에 나서고 있다.

◆ 수입차 시장 ‘독일 천하’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서 판매되는 수입차 브랜드는 28개로, 전국에 330여개(2012년 9월 기준)의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이들 브랜드가 판매한 자동차만도 지난해 13만858대(점유율 10%), 올해는 역대 처음 15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이처럼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다보니 유통 단계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수입차 시장은 해외 각 브랜드의 자동차를 수입하는 1개의 ‘임포터(importer·수입회사)’와 이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수의 ‘딜러(dealer·판매대리점)’로 나뉜다.

예컨대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가 국내 임포터로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를 설립하고, 그 아래에 한성자동차·더클래스효성 등 11개의 딜러를 거느리는 구조다.

브랜드 전략에 따라 임포터가 다수의 딜러와 공급계약을 맺다 보니 일부 인기가 많은 브랜드들은 몰려드는 딜러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한 BMW는 ‘미니’와 합쳐 8개의 딜러가 42개의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이 중에는 대기업 계열사인 코오롱모터스 외에도 자산규모만 1000억원이 넘는 도이치모터스 등 굵직굵직한 딜러들이 포진하고 있다.

코오롱모터스는 BMW코리아가 지난해 판매한 자동차 3만4106대 중 20%인 6000여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도이치모터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2963억원, 영업이익 35억원을 기록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의 11개 딜러 중 더클래스효성은 효성그룹 계열사다.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인 조현준·조현문·조현상씨도 총 10.44%의 지분을 투자할 정도로 수입차 사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 더클래스효성이 서울 강남대로에 운영 중인 메르세데스벤츠 전시장. 효성은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이 더클래스효성에 지분을 투자할 만큼 수입차 사업에 관심이 많다. /더클래스효성 홈페이지 캡처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판매량의 60% 담당하는 한성자동차도 자산 20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판매량 3위를 차지한 폭스바겐코리아는 10여개의 딜러들과 공급계약을 맺고 있다. 작년 수입차 판매량 4위인 아우디는 8개 딜러가 전국에 19개의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이처럼 유명 브랜드들의 촘촘한 유통망은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딜러들이 불러모으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지난해 초 폭스바겐코리아의 서울 양천구 지역 딜러 모집에는 수십개 업체들이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을 정도다.

◆ 비인기 브랜드 딜러, 구조조정 가속화

반면 국내서 인지도가 낮은 비 독일계 브랜드들은 소수의 딜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앞선 SS모터스 사례처럼 딜러권을 반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과거 비교적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기업 재벌 2~3세는 물론이고 중견기업, 지역 재력가까지 가세하던 상황과는 많이 달라진 셈이다.
▲ 프랑스 스트로엥의 DS3. /시트로엥 제공
일본 브랜드 미쓰비시는 2011년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철수한 뒤 지난해 CXC모터스가 1년여 만에 다시 사업권을 따냈다.

그러나 지난 10월 기준 판매대수는 55대에 불과하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시트로엥 역시 사정이 녹록치 않다. 당초 BMW 미니의 대항마로 주목 받았던 소형차 ‘DS3’가 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하면서 수입사인 한불모터스의 워크아웃 졸업도 요원해졌다. 서울 강남 지역 딜러권을 가지고 있던 CXC모터스는 지난해 말 딜러권을 반납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은 지난해 475대가 팔렸다. 현재 국내서 5개의 캐딜락 딜러가 활동 중이지만 2010년 말 이후 2년만에 신차(ATS)를 수입하는 등 새 라인업 출시가 지연되자 딜러들 사이에서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캐딜락 딜러들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된 ATS를 통해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500억원 정도의 투자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대기업은 물론 개인사업자들까지 수입차 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비 독일계 업체들의 자금사정은 좋지 않다”며 “이 때문에 딜러권을 반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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