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결제원, 유출 정보 일괄 폐기


전문 해커들에 의해 은행 고객 컴퓨터에 담긴 개인 보안정보가 무더기로 빠져나간 사실이 밝혀졌다. 유출된 개인정보 규모는 역대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결제원은 파밍(pharming) 수법을 통해 이 같은 범죄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유출된 공인인증서를 일괄 폐기했다. 금융결제원은 금융기관의 전산망을 연결해 각종 결제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다.

11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결제원은 최근 파밍 사이트를 감시하던 중 동일한 악성코드로 수집된 공인인증서 목록 뭉치를 발견, 이를 일괄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밍이란 가짜 사이트를 미리 개설하고 피해자 컴퓨터를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진짜 사이트 주소를 넣어도 가짜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해 개인정보를 빼내는 고도로 진화된 피싱 수법이다.

신한·국민·우리·하나·씨티·농협·스탠다드차타드(SC) 등 주요 시중은행에서 발급한 공인인증서가 많이 유출됐다. 외환은행 등에서도 10여 개가 빠져나갔다.

이에 금융결제원은 유출된 공인인증서 461개를 일괄 폐기하고서 지난 4일 이 사실을 해당 은행 정보기술(IT) 관련 부서에 통보했다. 금융결제원이 피싱이나 파밍 사이트에서 인증서들을 자체 적발해 한꺼번에 수백 개를 없앤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결제원이 손수 폐기라는 초강수 조치를 감행한 것은 공인인증서 특성상 시간을 지체하다가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최근 인터넷뱅킹 악성코드를 활용한 공인인증서 유출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IT 보안업계는 피싱으로 유출된 공인인증서가 수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공인인증서가 빠져나가면 인터넷 뱅킹으로 예금을 찾아가는 범행에 속수무책이다.

카드사들도 금융사기 공포를 경계하고 있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등 주요 카드사 고객 100여명은 지난해 말 안심클릭 결제창을 모방한 피싱 사고로 5000여만원의 피해를 봤다.

안심클릭 결제 시 카드번호 입력 후 새로운 팝업창이 떠 신용카드 번호와 유효기간을 추가로 입력하도록 하는 수법에 당했다. 입력이 끝나면 해당 정보가 고스란히 빠져나가 게임사이트 등 결제에 악용됐다.

최근에는 금감원 피싱 사이트(www.fscpo.com)가 금감원 홈페이지(www.fss.or.kr)를 그대로 베껴 소비자 피해가 생겼다. 새마을금고와 SC은행은 자사 고객센터로 속인 피싱사이트 안내 문자가 고객에게 대량 발송돼 긴급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한편 은행들은 해당 고객에게 전화로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긴급 공지하고 재발급이 제한됐으니 가까운 인증서 발급 기관의 영업점을 방문해 발급 제한을 해제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하마터면 대형 금융사기가 저질러질 뻔했는데도 일반인에게 알리지 않아 은행권의 보안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씨티은행만 홈페이지에서 해당 사실을 공지했을 뿐이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에서 피싱 관련 공인인증서 폐기 조치와 관련해 공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홈페이지에 공지하고서 해당 고객에게는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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