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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계약서에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에 관한 고객의 의사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 은행이 설정비를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20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5단독 엄상문 판사는 장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근저당권 설정비 75만1천750원을 돌려달라며 낸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에서 장씨의 손을 들어줬다.

엄 판사는 대출거래약정서와 근저당권 설정계약서 부담 주체란에 수기 표시가 없는 점을 이 같은 판결의 근거로 들었다.

그는 "해당 대출상품설명서의 내용만으로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실질적 개별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안은 약관이 무효이거나 관련 약정 자체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며 "담보권자가 원칙적으로 설정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 법령 취지에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용은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협이 패소한 적은 있지만 시중은행은 지난해와 올해 초 선고된 15건의 관련 소송에서 모두 이겼고, 이 가운데는 이번 사건처럼 계약서 상에 수기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판결한 재판부 측은 약관에 의해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무조건 부담시킨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선택권을 줬으며 고객들은 이로 인해 금리 감면 혜택을 봤다는 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승소했던 소송과 같은 사안인데 이번 판결만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즉각 항소해서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원고측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태산 측은 앞서 선고된 합의부 사건에서는 원고 숫자가 많아 설정비 부담에 관한 합의가 실제로 있었는지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반면에 이 사건은 계약서 등을 기초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태산의 이양구 변호사는 "은행은 설정비용을 고객이 부담하기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합의가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고, 계약서에 체크했다 하더라도 은행원 지시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라고 지적했다.

또 "항소심에서 기존 합의부 판결도 뒤집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은행연합회 측은 "전에도 계약서 상 설정비 부담 주체에 대한 수기 표시가 없었지만 금리 등 대출 조건이 달라졌다는 부분을 인정받아 은행이 승소했다"고 반박했다.

또 "체크가 안 됐다고 은행이 설정비 부담을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은행연합회측은 설명했다.

금융권은 이번 판결로 다시 긴장하고 있다.

시중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과 보험사 등 대출 과정에서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킨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소송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있을 선고에서도 은행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다만 이 같은 판결로 고객들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기간이 길어지고 집단소송이 남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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