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조직체계의 뼈대가 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야 간 이견 속에 국회 제출 한 달이 넘도록 처리되지 못하면서 국정공백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초 3일 오후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박기춘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청와대에서 만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은 야당의 '불참 통보'로 무산됐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 회담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문제와 관련한 막판 조율을 시도했으나, 구체적인 합의점 도출엔 실패했다.

현재 여야 간 정부조직법 개정 협상의 최대 쟁점은 인터넷TV(IPTV)와 종합유선방송국(SO), 일반 채널사업자(PP), 위성방송 등 보도 기능이 없는 방송매체의 소관 부서를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 이관하는 문제다.

민주당은 '방송의 공공성·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이 같은 내용의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1일에 이어 이날도 김행 대변인의 긴급 회견을 통해 "미래부는 방송의 공정성·중립성을 절대로 훼손하지 않는다", "방송·통신정책을 미래부와 방통위가 각기 나눠서 담당하는 건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며 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주문했지만, 야당은 여전히 "방송의 공정성 확보 방안이 미흡하다"며 정부·여당의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이날 "정부조직법 개정안 가운데 미래부 관련 사항을 제외한 다른 부분만이라도 우선 처리하자"는 역(逆)제안을 내놨지만, 청와대는 "방통위의 기능 분리와 미래부 설치는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새 정부 조직개편의 핵심"이란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또한 마찬가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날 오후에도 '물밑 접촉'을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절충점을 모색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로선 타결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야가 끝내 합의점 도달에 실패할 경우 오는 5일로 종료되는 2월 임시국회 회기 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도 물 건너 가게 되며, 새 정부에서 신설 또는 재도입되는 미래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사 청문 요청도 계속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청와대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미 국회 인사 청문 절차를 마친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임명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는 지난달 28일까지 소관 상임위별로 유정복 안전행정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내정자 등 3명에 대한 인사 청문 절차를 모두 마쳐 이들에 대한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가 4~5일 중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면 6일 이후엔 박 대통령이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하는데 법적 문제가 없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안전행정부'의 경우 현행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바꾸는데 불과하지만, '외교부'는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 관련 업무를 산업자원통상부(현 지식경제부)에 떼 주는 기능 재편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음을 들어 "장관 임명에 앞서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해당 부처의 세부 직제 개편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엔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국가안보실 구성에 관한 사항도 포함돼 있어 법 개정 전까진 행정 부처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업무도 공전(空轉)될 수밖에 없는 형편. 이 틈에 청와대 비서관 인선 또한 계속 늦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국무회의 또한 정부조직법 개정 이후 소집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첫 국무회의는 당초 지난달 26일로 계획돼 있었으나, 정홍원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 인준이 당일 오후에서야 이뤄지는 바람에 연기됐다.

이런 가운데,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정부조직법 개정 논의를 위한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 회동 무산에 대해 "야당이 대통령의 회담 제안을 거부해 유감"이라면서도 "정부와 대통령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

민주당에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잘 풀려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꾸 야당을 일방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쳐 걱정된다"면서 "'시간은 결국 우리 편'이란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은데, 여론이 그런 판단을 따라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각종 의혹에 휩싸인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 등의 사례를 들어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인사 문제가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는데, 새 정부 출범 뒤에도 그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정부조직법 개정 지연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는 게 그런 내부 비판을 피하기 위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로 취임 1주일째를 맞은 박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지난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 간 총 24개 국 및 국제기구에서 취임 축하차 방한한 정상 및 경축사절단 등 27명을 접견했다.

또 취임 사흘째인 27일엔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분야별 주요 현안을 점검한데 이어, 존 키 뉴질랜드 총리,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과의 통화를 갖고 상호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어 28일 하루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던 박 대통령은 이달 1일 제9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으며, 2일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신제윤 금융위원장,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후보자에 대한 인선안을 발표함과 동시에 여야 지도부와의 정부조직법 개정 관련 청와대 회동을 제안했었다.

박 대통령은 오는 4일엔 두 번째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관저에서 수시로 여야 간 정부조직법 개정 협상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으며, 청와대는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 회의 등을 통해 그 대응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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