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사퇴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히면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의 추진동력이 근본부터 흔들리게 됐다.

김 후보자의 사퇴 결심은 최측근 외에는 장관 인사 청문회 준비팀 실무 관계자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여야간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던 연휴기간 동안에도 사무실에 출근해 청문회 준비와 미래부 구상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날 김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로 새 후보 인선까지는 또 다시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해도 파행 운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실 미래부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시절 “과학기술과 ICT의 융합을 통해 일자리와 창업을 활성화해 현재 경제 위기를 돌파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책임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기로 했다.

창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미래 먹을거리 개발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풀어가려면 강력한 정책을 통해 이를 관리할 전담부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ICT) 분야 전담부처가 통합된 것은 정부 수립 이래 처음이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지 않은 채 7개 부처가 나눠 맡았던 기능들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실제 대통령 직속 장관급 기관으로 원자력 안전 정책을 맡았던 원자력안전위원회만 해도 진흥 기구 성격을 띠는 미래부에 산하에 넣으면서 과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이어 기초과학 분야의 진흥 기관을 신설되는 교육부에 남겨두면서 당초 과학기술 총괄 기구로서 성격이 약해졌다.

장관급 독임제 부처를 요구해온 ICT업계의 소망을 뒤로 하고 미래부 산하 차관급 조직으로 넣으면서 업계와 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방송 진흥 정책을 미래부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조직개편안 논란의 쟁점인 방송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방송정책의 미래부 이관을 반대하는 야당과 일부 방송업계,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렀다.

여기에 관심부처인 미래부의 장관 첫 인사도 매끄럽지 못했다. 지난달 중순 선임된 벨연구소 사장 출신의 김종훈 미래부 장관 내정자의 이중국적 문제와 미중앙정보국(CIA) 관계 전력 등 후보자 적격성 논란이 일면서, 미래부 출범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날 김 후보자의 사퇴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일자리 창출과 창업 활성화라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당분간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게 됐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과학기술을 통한 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문제는 물론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내세운 서민경제 보호 취지로 나온 통신비 인하 문제를 비롯해 통신과 소프트웨어 업계, 제조사 간에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망 중립성’ 등은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도 뒤로 밀리게 됐다.

전문가들은 미래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하려면 새 부처의 구체적인 비전을 두고 여야간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출범 초기 통합의 진통을 서둘러 최소화하고 융합을 극대화할 상생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선비즈가 이달 초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학기술계 인사 10명중 8명은 미래부 출범에 찬성했지만 ICT와 과학이 시너지를 낼 것이란 응답자는 5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새 부처의 임무와 비전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래 경제를 위한 구체적 비전이 제시되지 않은 채 “좋은 건 다 넣자”는 방식으로 조직 개편이 추진할 경우 이해관계가 얽힌 관료집단과 학계, 업계의 반발로 또 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학계 한 원로는 “기초원천 연구와 산업화, 창업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순환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미래부가 확실한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며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에 이어 새 부처 수장으로 물망에 오르는 인물이 별로 없어 여야가 합의로 새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과시켜도 출범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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