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는 2월25일 출범했다. 그러나 열흘을 넘기는 지금까지도 아직 박근혜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만 있을 뿐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장관이 한 명도 없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어 국민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멋지게 출발해야 할 새 정부가 과거의 정부와 혼재하고 있으니 꼴이 아니다.

박근혜대통령의 심중은 참으로 복잡할 것이다. 몇 차례에 걸친 대국민 담화나 야당을 향한 호소도 아무런 효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눈에 보일 듯싶다. 직접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의 목소리와 표정은 단호하다. 통치자가 되었으면서도 통치를 하지 못하는 엉뚱한 상황에 분통이 터질 것이다.

누구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국정 공백현상인지 국민은 따져봐야만 한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여야의 명분론에 따르면 새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에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일부를 할애하는 것을 야당 측에서 극력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 권한이라는 게 채널 배정권을 어느 부처에서 갖느냐 하는 것인데 그동안 방통위에서 장악해 오던 것을 새로 생기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가져야 한다는 정부안을 야당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방송을 장악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방통위는 정부부처가 아니라고 해야 논리적으로 맞는 말인데 방통위 역시 장관급 위원장이 있는 엄연한 정부부처 중의 하나다. 대통령이 법을 떠나 맘대로 할 수 있다면 몰라도 법을 지키며 정부를 운영하려면 미래창조과학부나 방통위는 똑같은 조직의 하나일 따름이다.

따라서 채널 배정권이 어느 부처에 있던 야당이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는 정부 고유의 권한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물론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여야가 협상을 통하여 새로운 법을 만들기도 하고 고치기도 한다. 민생과 관련한 문제라면 당연히 눈을 부라리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면서 여야의 주장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정도다.

원래 정치란 그렇게 해야만 가장 현명한 답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조직과 관련한 부처간의 권한은 정부의 편의와 조직의 유연성 그리고 어느 것이 국민을 위해서 가장 유리한 것이냐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려야 한다. 더구나 국민의 손으로 새로 뽑힌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아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분주하기 마련인데 그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으면 어떻게 국정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당리당략을 떠나 민생을 위한 정치임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일종의 국민기만이요, 국민배신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현재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이 여야간 합의로 통과한 덕에 과반수의석을 가진 정당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나 날치기는 아예 생념(生念)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고질적인 의장의 직권상정과 날치기 통과는 여당의 특권처럼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보유하고 있지만 박근혜대통령의 새 정부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화합과 대화로 이끌어 가려는 성숙한 자세에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선진화법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장을 통하여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과반수만으로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선진화법은 여야간의 대화와 협상을 강요하는 고리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를 빌미로 야당이 새 정부의 허리끈을 놓지 않는 것은 국민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라도 취임 초부터 박근혜의 기를 죽여 놓겠다는 저의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망측한 행동이다. 5년 전 이명박정부가 등장하자마자 벌어진 쇠고기 파동을 되돌아보라. 두 달 동안 계속된 촛불집회로 이명박은 넋이 나갔다.

오죽하면 한 밤중에 북악산에 올라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겠는가. 사람은 기가 죽으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맹점을 가졌다. 이명박은 촛불에 덴 후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촛불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엉거주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반쪽 자리 정권처럼 5년 내내 좌파세력에 끌려 다녀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한미FTA를 성사시키고, 녹색기금 사무국을 유치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는 등 괄목할 업적을 남긴 것은 다행스럽다.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난제가 쌓여 있다. 북한정권은 핵실험을 통하여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일본은 아베의 우경화로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치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북한 핵은 우리의 안보와 직면한 생존차원의 큰 문제다. 당장 전쟁이 있겠느냐 하는 식의 안이한 발상은 대처방법이 아니다. 핵이 없는 세상은 모든 인류의 꿈이다. 막무가내로 이를 어기고 있는 북한이 어떤 일을 저지르고 나올 것인지 신중 대처해야 한다.

중국만 믿는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북한은 우리 땅이며 우리 동포들이 사는 곳이다. 대화와 상생으로 나가는 길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다. 과감하게 공개적인 정상회담을 제안하여 김정은의 허를 찌르고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민주국가의 대통령임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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