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가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 대표와 공기업 사장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인사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대폭 '물갈이' 인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 개편이 지연되면서 이완된 행태를 보인 일부 공기업 기관장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확실한 책임하에 조직과 업무를 장악하라'는 새 정부의 메시지가 과거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의 '자리 보장'으로 오인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옥석을 확실하게 가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서 당면한 국정 과제를 언급한 뒤 "이런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가 많을 텐데"라는 말로 대폭적인 인사를 예고했고 '새 정부 국정 철학 공유'라는 인사 원칙을 제시했다.

MB 정부 색채 짙은 공공기관장·공기업 CEO 상당수 물갈이될 듯

박 대통령의 공공기관 인사 원칙은 한층 구체화됐다. 당선인 시절에 제시한 원칙은 '전문성' 하나였으나 이날 '국정 철학 공유'라는 한 가지 원칙이 더 보태졌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25일 "공기업, 공공기관 이런 데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을 해서 보낸다. 이런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데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언급을 감안하면 지난 정권에서 전문성 없이 '낙하산'으로 이뤄졌거나 누가 보더라도 'MB 사람'이라고 인식돼 새 정부와 국정 철학을 공유한다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은 물갈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교체 대상인 공공기관장·공기업 사장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는 70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헌법기관 고위직과 고위 공무원, 검찰·경찰 등 특정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공공기관의 자리는 590개에 육박한다.

한국전력공사·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30개, 국민연금관리공단·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준정부 기관 87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기타 공공기관 178개가 대상이며, 이곳의 기관장과 감사가 모두 대통령의 실질적인 인사권 아래 있다.

이 가운데 연내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장, 감사 등이 100명 가까이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과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사퇴해 현재 공석으로 있다.

특히 금융권은 지각변동에 가까운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힌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함께 금융권 실세라는 뜻으로 '4대 천왕'으로 불렸다.

금융계에선 오는 7월 임기가 만료되는 어윤대 회장의 연임 여부가 금융권 물갈이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바뀐 포스코와 KT 회장은

포스코와 KT의 CEO 자리도 관심이다. 두 회사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지 오래됐고, 정부 지분도 전혀 없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수장이 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공공기관 인사 원칙을 두 기업에도 적용하면 포스코의 정준양 회장과 KT 이석채 회장은 전문성에선 큰 흠결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처음부터 포스코에서 성장한 인물이고, 이 회장은 과거 통신산업을 관장했던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 철학 공유'의 원칙에선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정 회장은 회장으로 선임될 당시 MB 정권 실세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이 회장도 MB 정권이 임기가 남은 남중수 전 KT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앉힌 사람이다.

두 사람의 임기는 모두 2015년 봄 주총 때까지다.

하지만 두 회사에 대해서도 공기업 인사 원칙을 적용하려는 힘이 작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전문성' 원칙이 우선이면 자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국정 철학 공유' 원칙이 우선이면 흔들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보다 첫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 발언이 더 무거워 보인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