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비자금계좌 운용 언론보도 직후 사의표명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25일 전격 사퇴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중도 사퇴한 장·차관급 인사만 6명째로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인선 검증 시스템 부실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사배치의 잦은 누수로 국정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며 전격 사퇴한 한 내정자는 국외에서 수년간 수입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해왔다는 의혹이 사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민정라인도 지난주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관련조사를 진행했으며 조사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내정자는 ‘사퇴의 변’을 통해 “저의 공정거래위원장직 수행의 적합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돼 국회 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채 장시간이 경과하고 있고 이로 인해 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지위를 사퇴하고 본업인 학교로 돌아가 학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한 내정자의 사퇴는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차관,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에 이어 박근혜 정부들어 6번째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출신으로 조세법 전문가인 한 내정자는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되고 인사청문요청서가 국회에 제출된 직후부터 야당으로부터 낙마 공세를 받아왔다.

인사청문요청서에 따르면 그의 재산규모가 109억원으로 과도하게 많은데다 상습 세금탈루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김앤장과 율촌 등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어, 공정위원장에 적임인지를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히 대형 로펌에서 장기간 근무하면서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온 것으로 드러나 ‘경제 검찰’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야당측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다.

실제 한 내정자는 2004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서울 송파세무서와 용산세무서를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이 부회장을 대리했다. 총수 일가의 편법증여 관련 소송이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자신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한 내정자에게 논공행상 차원에서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준 것이 아니냐고 비판해왔다.

한 내정자는 새누리당 대선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 정부개혁추진단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민주통합당이 한 내정자에 대한 낙마 공세를 펴면서 국회 정무위는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한만수 후보자가 해외에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관련세금을 탈루해온 혐의가 짙다”며 “한 후보자가 2011년 국세청의 해외자산 자진신고 제도 도입을 계기로 해외 비자금 계좌를 뒤늦게 신고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세청에 한 후보자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여부, 계좌규모, 계좌 개설 시점 및 개설국가 등 관련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주장한 것이 한 내정자의 낙마를 결정적으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와대는 지난주 한 내정자의 이 같은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지명 철회 쪽으로 판단을 굳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주 민정수석실에서 한 내정자와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 확인을 했고,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 확인이 된 이후에는 사퇴시켜야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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