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독립성이냐, 김중수의 독립성이냐"

정부, 여당, 청와대로부터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5일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는 오찬을 겸해서 열리는데 김 총재는 이날 점심을 몇몇 한은 간부들과 함께 했다.

김 총재는 이날 오후 1시15분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은 집무실에 돌아오는 길에 기자와 만나, 서별관회의 참석 여부에 대한 질문에 "시간을 보면 알지 않나. 이 중요한 시기에 한은 일을 해야지"라고 답했다.

김 총재는 이날 낮 12시쯤 차를 타고 가지 않고 걸어나가서 한은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들어왔다.

김 총재의 서별관회의 불참에 대해서는 한은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제스처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 총재의 전임이었던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서별관회의에 초청을 받고도 의도적으로 몇 차례 불참하기도 했다.

한은 총재가 다른 경제장관들에 둘러싸여 금리조정 압력을 받는 것 자체가 한은 독립성을 해친다는 인식에서였다.

그러나 김 총재의 이런 행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친정부적 행동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김 총재는 2010년 한은 총재 취임 당시 "한은도 정부다. 한은이 정부 정책과 잘 협조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총재가 이날 기자와 만나 "이 중요한 시기에 한은 일을 해야지"라고 말한 것도 한은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행보로 읽힌다.

이를 감안할 때 정부, 청와대와 여당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은 금통위가 오는 11일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 총재는 향후 경기에 대해 비관적인 정부와 달리 경기회복에 대해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입장을 펴왔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대폭 낮춰잡고 최대 2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방침에 이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부동산 경기진작책을 내놓았지만 김 총재는 지난달 14일 3월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회견에서 2월에 이어 재차 미국 중국 등 대외 경제여건 개선을 언급하며 "소매판매, 설비투자는 1월에 전월대비로 마이너스를 보였지만 2월에는 마이너스로부터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달 22일 시중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는 "저금리의 장기화로 인해 버블 형성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취약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며 "이런 문제는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중앙은행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총재의 최근 행보에 대해 임기보장과 관련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청와대와 여당 일부에서 김 총재의 교체 필요성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한은의 독립성을 강조해야 내년 3월까지 임기를 채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총재는 최근 청와대로부터 유임을 통보받은 양건 감사원장과 달리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장 관계자는 "한은의 독립성을 후퇴시켰다고 평가받는 김 총재가 한은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한은의 독립성을 위한 것인지, 김중수의 독립성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별관회의는 거시경제정책협의회의 별칭으로 주요 경제ㆍ금융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다.

이날 회의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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