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지족분(知足分)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족함을 알고 분수를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간단하기 짝이 없는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리 많아도 적게 느끼고, 더 이상 출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높이 올라간 사람이 더 올라가지 못해서 안달을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꼴을 수 없이 볼 수 있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만 한다. 꼭 정상을 밟지 못했을지라도 바람이 심하고 눈이 많이 내리면 하산하는 게 상수다.

히말라야에 등산하는 세계적인 산악인 중에서도 이러한 등반(登攀)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정복을 하고야 말겠다는 억지투지를 불사르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이들이 한둘 아니다. 산악지대의 특성과 변화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찮겠지”하는 자만심이 불러낸 비극이다. 이러한 사례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어디에든 있게 마련이다.

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분야에서는 서로 앞에 서려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서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에 우리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의 리콜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사태가 어디까지 치달아오를 것인지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도요타는 그동안 신화적인 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일본인의 긍지를 높여줬다.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가격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GM을 따라 잡았다.

GM은 브랜드 하나만으로도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미국의 자존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도요타가 GM을 누르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왕국 자리를 차지했다. 연 생산 1000만대를 돌파한 것이다. 미국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한 때 일본의 경제력이 우세해지면서 미국의 유수한 빌딩들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간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층을 자랑하며 미국을 상징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넘어갔을 때에는 미국의 언론이 통곡성을 내질렀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되찾았다.

GM이 세계1위의 자리를 도요타에 내준 것은 엊그제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요타 자신이 자책골을 내주고 있어 도전과 응전이 볼만하게 돌아간다. 도요타의 판매량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곧 1위를 반납해야만 한다. GM이 잘해서가 아니라 도요타가 잘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도요타가 일본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는 아직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외국에 있는 현지공장의 제품이 말썽이다.

하자(瑕疵)부위도 한두 군데가 아니고 여기저기다. 처음에는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내려갔던 페달이 올라오지 않는 결점이 발견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페달을 생산하는 협력업체가 이를 뒤집는 성명을 내자 이번에는 전자 제동장치의 설계에 문제가 있는 양 말하고 있다. 저속운행 중 브레이크가 1초 동안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20km로 운행하더라도 1초면 5m이상 미끄러져 나간다고 하니 자칫 큰 사고를 유발할 만도 하다.

여기에 최첨단 환경자동차라는 하이브리드 카 마저 흔들린다. 새로운 시대의 무공해자동차를 표방하여 세계의 선두에서 달리던 기세가 브레이크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브레이크가 걸렸으니 이래저래 도요타는 브레이크의 저주를 받는 셈이다. 미국 포드회사도 일본식 하이브리드 카를 생산했다가 똑같은 하자 발생으로 리콜을 발표했으니 이런 경우에는 우리의 속담이 틀렸다. 어차피 맞을 매도 나중에 맞는 놈이 났다고 고쳐야 되겠다.

한국의 현대․기아도 후발주자로 하이브리드 카 생산에 나서고 있는데 도요타 사태를 눈여겨보고 출시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현대․기아 역시 급속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도요타를 모델로 한 것이라면 무리한 생산증대보다는 안전과 품질을 우선적으로 점검하여 행여 실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력에 한참 뒤지고 이미지 면에서도 뒤떨어져 있는 한국이 도요타의 불행을 기화로 두 단계 도약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분수를 아는 길이다.

선두를 달리던 소니는 삼성에게 덜미를 잡혀 뒤로 물러섰지만 삼성을 넘보는 세계 각국의 전자업체는 무수하다. 소니 등 대기업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도전장을 냈으며 설상가상으로 산업스파이에게 사업기밀이 누설되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국내 하이닉스에만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외국에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크다. 1위는 영광이지만 이를 고수하는 것은 도전할 때보다 더 많은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올려다보지도 않으면 영영 올라가지 못한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시점에서 일본기업의 불행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회에 딛고 올라서겠다는 생각보다는 선의의 경쟁자로서 함께 겪어야 할 아픔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도전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마지막 쐐기는 절대적 우위를 확보했다는 확신이 설 때 힘차게 내리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요타 사태는 우리에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귀중한 체험이다

전 대 열 /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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