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만에 재현되는 산남의진순국선열위령제
지난2월 18일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관리번호 : 33-1-46)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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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사는 28일(일) 105년만에 조상의 고귀한 애국얼을 기리기 위해 산남의진순국선열위령제를 지내게 되었다.
독도와 위안부 등 일제의 망발이 계속되고 있고 지금도 일본 각의 168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하는 등 , 잊고 살아온 지난 105년 동안의 세월속의 부끄러움을 ,그리고 의병의 애국정신을 되세기고자 거동사(주지 혜신스님)에서 오는 28일(일) 산남의진순국선열위령제를 거행하게 된 것이다
산남의진(山南義陣)이란
영천시 자양면 출신의 정용기에 의해 처음 결성된 후 부친 정환직, 흥해 출신의 최세윤으로 이어지면서 포항,
즉 옛 영일군 일대를 중심으로 거센 항쟁의 횃불을 들었던 구한말 제2단계 의병 운동을 대표하는 의진이다.
* 삼남(三南)) - 경상, 전라, 충청
* 산남(山南)- 경상북도 문경 새재 이남의 영남 지방
* 의진(義陣)-구국 일념의 충성된 의기로 뜨겁게 뭉쳐진 의병 진영을 일컫는 말이다.
1906년 2월 고종의 밀지를 받은 정환직의 노력으로 아들 정용기를 대장으로 하 여 3000여 의병으로 편성 - 서울로 북상하던 중 영천, 신녕, 청송, 진보, 흥해, 청하 등 곳곳에서 일병들의 기지를 습격하여 전과를 올렸다.
* 1907년 8월 영덕군 달산면 팔각산 부근에서 일본군 대부대와 일대 격전 치름.
* 1907년 9월 1일 영일군 죽장면 입암리 전투에서 대장 정용기를 위시하여 이한 구, 손영각, 권규섭 등 도합 40여명의 의병 일시에 순국- ‘산남의진입암지변(山南 義陣立巖之變)’
* 1907년 9월 27일 정환직을 2대 대장으로 추대 재결성-정미7조약으로 인해 해산 된 진위대 제3대대 경주 분견대 부위 이하 30여명의 훈련받은 군인들이 대거 합 류하여 전략 증강
* 1907년 10월 곳곳에서 일병들의 주둔지를 엄습, 연전연승으로 포항 일원에서 기 세를 떨침
* 1907년 11월 의진 일시 해산 후 정환직 대장 청하현에서 체포, 영천옥에서 사형
1908년 3월 5일 정환직의 조카 정순기의 부탁으로 최세윤을 대장으로 추대,
* 보현산 거동사에서 영령들에게 위령제 지낸 후 재결성(3대 산남의진)
* 재결성 후 기계 달성 경산 등지의 왜병을 격파하고 의성으로 진격했다가 패전
* 전체 의병을 4개 대대로 편성, 유격 게릴라 전술 감행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 함 : 최세윤(경주동쪽 남동대산), 이세기(보현산), 정순기(북동대산), 우재룡(팔공 산), 박태종(의성 비봉산), 임용상(청도 운문산), 서종락과 남석구(청송), 손진구 (화왕산)
특히 포항지역이 산남의진의 주 활동 근거지가 되었고, 한말 의병운동사에 포항 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놓아지게 됨.
* 1908년 7월 경주시 양북면(옛 장기군 내남면)에서 최세윤 대장 체포-1911년 11 월 대구재판소에서 10년형을 언도-1916년 8월 9일 11간의 단식 끝에 순국 함.
* 최세윤 대장 체포 후 구심력을 잃고 산발적인 활동을 하다 1909년 흩어짐.
정환직, 정용기가 이끄는 산남(山南 ; 영남을 말함)의진은 1905년 을사오조약 늑결 직후 영천을 중심으로 한 경북 남동부 일대에서 그 위세를 크게 떨친 의병이다. 특히 이 의진을 주도했던 정환직, 정용기는 부자간으로 양대가 의병대장에 올라 항일전을 수행한 끝에 모두 순국하고 만, 의병항전사상 유례가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중앙뉴스 / 신영수 기자 /youngsu4903@naver.com
신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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