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KTX, 수서발 KTX, 이상한 회사 만드는 국토부

국토부가 26일 철도산업위원회의 형식적 심의를 거친 끝에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 방안의 핵심은 수서발 KTX의 운영사를 설립해 코레일과 경쟁시켜 철도를 효율화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은 이명박 정권 시절 제출되었던 민영화안과 다를 바 없는 우회된 민영화다. 한국 철도가 비효율적이고 방만하게 경영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독점에서 비롯됐다.

지난 정부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그러나 경쟁을 도입할 바에는 비효율적인 공기업이 아니라 효율을 기대할수 있는 민간기업이 들어와야 한다는 게 지난 정권의 일관된 논리였다. 고속철도를 나눠 경쟁을 시키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난 MB 정권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수서발 KTX 민영화안은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민영화를 통한 개혁이 힘을 얻었지만 세상이 변했다.

작은 정부를 만들고 민영화와 무한 경쟁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가 이 사회에서 상위 1%에게 부를 안겨 주었던것많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물레방아같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국토부는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철도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민영화'라는 비난을 어떻게 피해갈지가 걱정되는 부분이다. 국토부가 '철도 개혁 방안'이라며 민관 합동 방식의 지분 구조안 등을 내놓았다가 철회하고, 막판에 연기금을 동원하는 안으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면 정부 정책이 얼마나 허술하면 주먹구구식으로 마련되는지 기가막힐 노릇이다.

국토부의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은 한국 철도를 근본적으로 알려고 하지않았던 것부터 출발한다. 한국 철도를 진단하는 전제부터 잘못되었다고 판단 되기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한국 철도의 비효율과 방만한 경영 때문에 철도에 적자가 생겼다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 주장했지, 철도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모색하지 않았다.

한국 철도의 무사안일주의가 문제다. 단 한번만이라도 철도공사가 한국 철도의 적자가 왜 생겼는지, 아니면 다른 원인은 없는지를 점검하고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운영체계를 들여다 보고 그들이 철도 적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되거나 토론되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한국 철도의 적자와 비효율 문제를 접근해 보면, 단순히 무능 독점 기업인 코레일의 문제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드러난다. 부끄러운 것은 한국 철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그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사람들이야말로 그동안 한국 철도의 부실을 더욱더 키워온 장본인들이라는 것이다.철도 산업에 대한 철학과 영혼이 없는 관료들이 수술칼을 들고 철도 산업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모습은 절망스럽다.

여기서 '수서발 자회사' 설립 문제를 조금만 꼼꼼히 헛점투성이라는 것을 금방 알수 있다.국토부는 '공기업의 자회사'를 출범하면서도 그 자회사를 공기업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 말도 안돼는 주장을 했다.

국토부는 지난 20여 년간 민영화와 철도 경쟁 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주장해왔다. 마침내 26일 일단 민영화를 우회하는 경쟁 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수서발 KTX의 설립을 통해서 자신들의 20년 꿈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수서발 KTX 분리를 포함한 민영화 방안을 밀어붙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국토부가 추진한 한국 철도의 대수술 방안을 승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를 통해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액션이 아니었느냐 하는 말들이 많다.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집권 초기부터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을 위한다는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국토부의 정책이 관철되면 3단계 발전 전략에 따라 서울발 KTX와 수서발 KTX가 경쟁을 벌일 것이다. 국토부는 지방 적자 노선 민영화를 추진하고, 모든 노선에 경쟁적 요소를 도입할 것이다. 지하철 9호선과 용인 경전철, 만들어 놓고 운행도 못한 채 법정 소송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인천의 월미 은하레일 같은 사태가 전국의 철도망에서 벌어질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핵심 간선 철도망의 대표 상품인 고속 철도를 분리해 경쟁시키지 않는다. 독일의 고속 철도 회사에서 프랑크푸르트발 ICE가 따로 있고 베를린발 ICE가 따로 있지 않다. 프랑스나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자국 철도의 얼굴인 고속 철도는 그 나라의 대표적 공기업이 독점적으로 주 간선망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다. 한국처럼 서울발 KTX와 수서발 KTX라는 이상한 회사로 나누어 경쟁시키지 않는다.

경쟁의 실질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국토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 19일 신경민 의원 등 민주당 의원 5명이 국회에서 연 '철도 산업 관련 토론회'에서 김경욱 국토부 철도국장은 "서울발 KTX와 수서발 KTX의 경쟁 효과가 아니라, 철도와 자동차나 타 교통수단의 경쟁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철도 산업에서 경쟁이 발생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 경쟁이 제대로 구현되었던 적도 없다. 철도의 역사는 오히려 국토부의 주장과 정반대로 전개됐다. 즉, 철도가 경쟁을 통해 양산했던 비효율을 국가 독점 체제로 전환하면서 극복해온 역사가 있다.

근대화 초기 철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민간 자본이 철도를 부설했고 운영했다. 이러다 보니 상호 간 호환성의 문제, 경쟁 구간에서 수익성 하락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정부가 나서서 철도를 국가의 소유로 전환하는 '국유화 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 국유화 정책이 자리 잡고 국가 독점적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야 경쟁이 빚은 많은 폐단들이 극복됐다.

국토부는 코레일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수서발 KTX의 요금을 10%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것을 경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국민에게 '경쟁의 효과'를 구현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서발 KTX 요금 인하'라는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정부와 공기업의 공적 역할에 대한 관료들의 철학이 얼마나 수준 이하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부산에서 서울 명동에 볼일을 보러 오는 사람이 요금이 10% 싸다는 이유로 수서발 KTX를 이용할까? 고속 철도를 이용하는 이유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인데, 철도 요금 10%를 아끼고자 수서행 KTX를 타고 다시 한두 시간을 들여 목적지에 가는 비상식적인 행위가 이루어질수가 있다고 보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이야기다.

게다가 수서발 KTX는 서울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과 분당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게 된다는 점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부유층이 더 혜택을 받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일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도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현재의 고속 철도 요금이 비싸서 이용 시민들의 부담이 가중된다고 느낀다면,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코레일에 고속 철도 요금 인하를 유도해야 순서일 것이다. 서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 고속 철도 요금을 인하하자고 요구했던 노조의 주장에 대해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했던 국토부가 태도를 바꾼 이유가 궁굼할 따름이다.또한 국토부의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이 만들어낼 한국 철도의 미래를 보자니 두렵기만 하다.

한편 민주노총 철도노조(위원장 김명환)가 ‘철도민영화’를 묻는 파업 찬반투표에서 조합원의 89.7%가 찬성해 가결시키고 29일 전국단위에서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또한 오는 7월 1일부터는 철도와 지하철을 중심으로 선전전에 나서며 7월 13일에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노조측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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