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이 심상치 않다.

전세가격은 상승행진을 지속하고 대출을 얻어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여유 있는 세입자들의 매수 외면과 집주인의 월세 선호 현상,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 등 요인 탓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하면 주택 거래 부진, 전세 상승, 월세 확대 등으로 주택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택 수요·공급 조절, 거래 활성화를 위한 세제 등 지원대책, 금융권 전세대출 차별 적용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전국 전세가격,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1% 치솟아 두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 김모(40)씨는 작년 10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전용면적 112㎡(옛 34평) 규모 아파트 전세를 3억5천만원에 구했다.

현재는 4억6천만원으로 작년 10월 입주 당시보다 1억1천만원 오른 상태.

재계약 시점인 내년 10월까지 전세금이 얼마나 더 오를지 알 수 없고 이미 1억5천만원의 전세대출을 받아 추가 대출로 전세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씨는 7일 "추가 대출로는 오른 전세를 내기 어려워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이사 가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주택 기준 전세가격은 2008년 말보다 30.98% 뛰었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 상승률인 10.21%의 3배에 이른다.

전국 주택 전세가격 상승률은 ▲ 2009년 3.39% ▲ 2010년 7.12% ▲ 2011년 12.3% ▲ 2012년 3.52% ▲ 2013년(상반기) 1.72% 등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2.75%에 달한다.

부동산114가 조사한 결과 서울 강남 삼성동 힐스테이트1단지(전용 114.46㎡) 전세가격은 8억7천500만원으로 6개월 만에 1억2천만원 올랐다.

광진구 자양동 더샵스타시티(139.6㎡)는 1억원 상승했고 성동구 금호동2가 래미안하이리버(84.99㎡)는 작년 말 3억4천500만원에서 4억3천500만원으로 상반기에 9천만원 뛰었다.

경기와 인천 소재 아파트 전세가격도 상반기에 최고 4천만∼6천500만원씩 올랐다.

주택 전세가격 총액 1천300조원 전세가 상승으로 전국 주택의 전세가격 시가총액은 보수적으로 잡아 1천300조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현재 2천200조원 안팎인 주택 매매가격 시가총액의 절반 수준이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시가총액은 6월 말 기준 1천150조원으로 집계됐고 연립·다세대·단독·다가구 등 주택의 공시가격 기준 전세는 123조원 정도로 계산된다.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의 전세 총액은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단독 등 나머지 주택의 공시가격 총계(564조원)에 전세비중(21.8%)를 반영해 구한 수치로, 시가를 적용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전세가 상승 요인에 대해 전세매물 부족과 재계약 등 수요 증가, 월세 선호 현상 심화 등을 꼽았다.

은행들이 최근 전세 수요를 잡으려고 전세대출 상품을 내놓는 것도 전세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올해 하반기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이 10만가구에 불과해 전세가격 상승 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김씨처럼 세입자들 상당수가 자금 여력이 없어 빚을 얻어 전세 보증금을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가 더 오르면 전세난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연구위원은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로 최근 몇 년간 전세가격이 뛰어 대출을 얻어 전세를 마련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며 "전세가격만 계속 오르면 주택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세→매매 활성화 가능할까? 사정이 이렇지만, 전세 수요가 매매시장으로 전이되지는 않고 있다.

가격 상승 기대가 약한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보다 전세보증금만 부담하는 게 낫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만 해도 아파트 기준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전국 69.5%, 서울 64.6%를 각각 기록하고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돌아서면서 주택 거래가 활성화했다.

현재 이 비율은 전국 63.7%, 서울 57.7%로 각각 나타났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가격 상승 기대심리는 약화했고 전세에 대출이 낀 점도 악재"라며 "전세가 비율이 60% 수준이지만 매수 수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미 전세보증금에 10∼20%의 대출이 끼어 있어 추가 대출을 받는 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 대출 금리가 올라 하우스푸어(주택담보대출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면 렌트푸어(주택임대 비용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만 가중된다.

일각에선 전세가격이 어느 수준까지 오르면 매매가격도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주인이 대출 감당과 가격 하락분을 만회하기 위해 임대료를 올리면 결국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임대료가 치솟자 매매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도 전세가격이 좀 더 오르면 매매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고 세금감면 등 집주인에게 이점이 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주택 거래 활성화와 렌트푸어 구제를 위해 금융권이 전세대출 상품을 차별 적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주재 전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현 주택시장의 문제는 매수 여력이 있는 사람도 집을 사지 않는 점과 서민의 주거 불안이 문제"라며 "전세대출은 여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소득 수준이 낮은 진정한 렌트푸어를 대상으로만 제한적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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