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TV에서 기억을 잃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주인공의 고뇌를 볼 수 있다.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스스로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기억은 우리가 바라보는 한 인간이 누구인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지나간 우리들 삶 속 기억의 조각들이 한데 모아져 우리들 자신의 인생을 구성하게 해준다.

진호현의 음악은 그러한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자신을 바라볼 수 없는 통과의례와 같은 음악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켜켜이 쌓인 기억들을 일깨우는 그만의 능력은 아직은 미완의 원석이지만 순도가 높은 보석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청계천 로맨스’는 그런 특징이 도드라지는 곡이다. 로맨스라는 말은 다른 말로 ‘연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노래의 작법은 과거 이문세, 이영훈 콤비가 완성했던 ‘광화문 연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담담한 반추’가 이 곡의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사 속에 등장하는 SNS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초승달’, ‘냇물’, ‘입술’등의 단어들은 이 노래의 색다른 정서를 대변한다. 우리가 잃고 또 기억하지 못하는 순수한 시대를 이야기하는 이 노래는 기억을 위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투명한 건반과 함께 시작하는‘별꽃 나무’는 미디엄 템포의 어쿠스틱 기타사운드가 돋보이는 중반부, 일렉트릭 기타가 휘몰아치는 절정부분을 지나면서 기승전결로 완성되는 곡이다. 시어와 같이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는 이 풍성한 노래의 가사말을 되새겨 보면 노래를 만들어내는 송라이팅의 탄탄한 재능과 진중한 노력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도달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청춘의 넋두리와 같지만 곡을 풀어내는 재주가 신선하다.

진호현은 하고 싶은 게 무한히 많은 뮤지션이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일상의 언어로 동감을 강요하는 요즘 식의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것, 그 이상의 것을 쫓고 갈구하는 뮤지션이다. 단 두 곡으로 그의 재능을 평가하기엔 갈급하다. 지고지순한 그의 언어가 더 명석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음악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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