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당신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라노>는 1세대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재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패션역사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것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사진왼쭉부터 주인공 노라노 (노명자)디자이너와 김성희 감독

노라노가 최초로 기성복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소비문화의 주체로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했던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으며, 미니스커트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윤복희’라는 스타가 있었을 뿐 아니라,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희 감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대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여성들의 욕망을 포착해 낸다. 단지 섹시한 이미지가 아니라 ‘직업 여성’, ‘멋있고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노라노의 옷을 통해 표현해 냈던 것. “나는 옷을 통해 여성들의 생각을 바꾸고,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는 노라노의 철학이 당대 여성들에게는 위험한 상상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새로운 도전의 계기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패션이라는 소재로부터 여성문화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노라노>는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패션의 역사를 바라보는 FASHION 다큐멘터리이자, 주체적인 삶을 꾸리고자 하는 여성들의 열정을 묵묵히 응원하는 PASSION 다큐멘터리이다.

감각적인 편집, 다채로운 음악 사용, 효과적인 재연 장면의 활용 등 다큐멘터리의 트렌드를 담아내다.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연상 시켰던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2012), 실제 경기만큼 진한 감동을 선사했던 스포츠 다큐멘터리 <굿바이 홈런> (2013), 제주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잊혀졌던 역사를 좇는 다큐멘터리 <비념> (2013) 등 다양한 형식, 다양한 장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들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다큐멘터리 작품들의 극장개봉이 점차 증가하면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노라노> 또한 기존의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쉽게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과감하게 접목시켰다. 실제 배우들이 노라노의 과거를 연기한 재연 장면을 사용한다거나, 대한뉴스, 고전영화들, 당대 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뉴스 스크랩 화면들을 다채로운 음악과 함께 짜맞추어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감각적인 편집과 세련된 구성이 영화적 재미 또한 선사하고 있는 것. 제 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당시, ‘재미있다’, ‘감각적이다’, ‘다큐멘터리라서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는 평이 나온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유행을 담아내는 패션이라는 소재를 다큐멘터리 작업의 트렌드를 반영한 세련된 연출로 담아낸 <노라노>는 10월 31일 개봉한다.

<노라노>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1950~70년대 ‘발칙한’ 여성탄생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나는 마치 길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어 오른 계집애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둑 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은 전후 급작스레 일깨워진 여성 욕망과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 사이에서 울렁이던 1950년대 여성의 근대 체험을 이와 같이 묘사한다.

1950년부터 본격화된 근대화 프로젝트는 예상치도 못한 ‘위험한 여성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전쟁통에 잃어버린 남편, 아들을 대신해 남성이 도맡아왔던 자리를 꿰차게 된 여성들이 이제 직장으로, 거리로, 땐스홀로 나서기 시작했다.

서구화된 근대 문물과 문화, 가치는 여성들을 울렁이게 만들었고, 전후 경제적 복구와 근대사회로의 도약을 제1의 과제로 삼고 여성 노동력을 요구했던 국가정책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정당성을 제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두드러진 여성들의 약진 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낀 남성들은 “웬만큼 똑똑치 못한 남성은 여인의 손에서 얻어먹고 살게 되었다”(「여원」, 1959)며 연일 울분을 토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근대화 과정은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이미지와 가치들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교양’ 있는 여성의 탄생을 요구했다. 아프레 걸, 자유부인, 유한 마담, 여대생, 미망인, 주부 등과 같은 여성 이미지 및 담론이 여성들을 가르고 구분하기 시작했다.

“교양이나 인격은 부수적인 조건이요 남성의 정열을 물질로써 표시할 수 있는 곳에 좀 더 매력을 느끼는”(여성계, 1957) 아프레 걸, “불량배와 작반하여 땐스홀 출입이 빈번”(「여원」, 1955)한 여대생, “자기희생을 저버리면서 허영과 의타에 의존한”(여원, 1968) 자유부인에 대한 탄식이 쏟아졌다. 반면 천박한 여성이 되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할 ‘교양’이 강조되었고, 이제 여성은 교양 있는 현대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화장, 의복, 언어사용, 대화, 인사법, 호칭 등의 ‘에티켓’을 체화해야만 했다.

커피, 담배, 스타킹, 퍼머, 하이힐, 패션쇼, 양장, 쇼핑, 냉장고, TV 등으로 대표되는 모던한 상품과 이미지를 마시고 입고 사용하면서도 모성, 내조, 정숙, 현모양처와 같은 전근대적 가치를 수호할 수 있는 여성. 그것이 바로 당대가 요구한 여성이었다.

이처럼 1950년부터 본격화된 근대화 프로젝트는 여성들이 직장으로, 거리로, 땐스홀로 나서는 것을 ‘용인’해 주었지만 동시에 여성들이 맞이한 ‘자유’를 비난하고 통제하였다. 한편에서는 패션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여성을 새로운 소비주체로 호명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와 가정의 ‘집사람’이 될 것을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 속에서 여성들은 갈등하고 타협하며 여성문화와 역사를 만들어왔다.

역사는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누리는 현재는 과거의 소소하지만 켜켜이 쌓인 작은 도전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여성들이 만끽했던 새로운 자유와 문화, 그에 대한 비난과 통제가 얽혀있던 1950~70년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구성해왔다.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그 잊혀진 역사를, 살아있는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복원하고 발굴하며 다시 구성하고자 한다.
 
▲     노라노(가운데) 기자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잊혀진 여성문화의 재발견

85세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에게 듣는 1950~70년대 대중문화 이야기, 지금은 별다른 의미 없이 단순한 ‘취향’이나 ‘스타일’로 용인되는 많은 것들에 커다란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5,60년대 여성들이 치마, 저고리를 벗고 양놈들의 되바라진 차림새라 비난받았던 ‘양장’을 걸쳤을 때가 그러했고, 남자들만의 옷이었던 여성답지 못한 ‘바지’를 입었을 때도 그러했으며, 허벅지를 드러내 사회를 경악시킨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을 때도 그러했다.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여성을 옭아매고 있었던 전통과 기성세대,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도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1950~1960년대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과거에도 현재를 만들어낸 도전과 저항이 존재한다. 전후 물밀듯이 밀려드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동경과 갈망, 그리고 가부장적인 전통과의 갈등 속에서 당대 여성들은 시대와 타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전하기도 하면서 변화를 만들어왔다. 격동의 시대, 암흑의 시대라 불리던 그 시대에 평범한 여성들이 만들어낸 ‘대중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는 이러한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적이고 대담한 도전을 제대로 들춰내고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없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1950~1960년대 여성들의 일상과 문화를 당대 여성패션과 문화의 최고 상징이었던 패션디자이너 ‘노라노’를 매개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 최초 패션쇼 개최, 최초 기성복 제작, 최초 미국백화점 입점 등의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는 노라노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 한국 패션계를 주름잡았던 당대 대표적인 패션 디자이너였다. 퍼스트레이디에서부터 고관 부인들, 연예인, 여교수, 고급 기생에 이르기까지 ‘최고’ 인물들이 노라노의 옷을 찾았다.

또한 노라노는 한국전쟁 이전 흥행했던 연극과 여성국극, 전후 미8군쇼, 영화, TV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노라노는 여성의 몸과 욕망을 기획하고 디자인한 패션 디자이너로서, 여배우의 코디네이터로서, 대중문화 기획자로서 여성 문화사를 만들어왔다.

전후 서구화와 전통의 복원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아리랑 드레스’에 담았고, 대중문화의 확장 속에서 소비주체로 등장한 신세대 여성들의 욕망을 ‘미니스커트’와 ‘판탈롱’으로 디자인했으며, “화장에 관심이 있고 요부다운 아내”(「여원」, 1958)에게 늘어진 메리야스를 대신 ‘홈드레스’를 선사했다.

노라노의 옷은 당대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교양과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또한 비단 상류층 여성들뿐 아니라 멋내기에 눈을 뜬 다양한 여성들의 욕망의 대상이자 로망이었다. 그렇다면 5,60년대 여성들은 노라노의 옷을 통해, 노라노의 이름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에 저항하고 싶었을까. 5,60년대를 기억하는 ‘노라노’와 그녀를 기억하는 노년 세대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그 동안 ‘문화’로 명명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일상을 대중문화의 한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당대의 문화 생산의 주역으로서 다양한 여성들의 경험을 다시 그려보고자 한다.

신여성의 계급과 젠더에 대한 재해석한 신여성 노라노를 통해 본 다르고도 같은 여성 이야기이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4·19와 5·16,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한국 근현대사를 겪으며 여성의 몸을 기획하고 디자인해온 노라노의 삶은 한국 여성의 근대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군위안부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7세에 일본 대위와 결혼, 해방과 함께 19세에 이혼, 미국으로 유학,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노라노는 부르주아 계급의 특권층으로서, 가부장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혼한 여성으로서, 몰락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이뤄낸 여성으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냈다.

또한 노라노는 한국 근현대의 ‘보통’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 고종황제의 영어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 경성방송국 국장인 아버지, 최초 아나운서 어머니 밑에서 차녀로 자란 노라노는 특권층의 삶을 누려왔다. 양장이 흔치 않던 시절 세라복을 입고 초등학교를 다녔고, 화장품을 챙겨 피난길에 나섰으며, 한국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고, 일찍이 미국이라는 미래를 경험한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이었다. 때문에 ‘미래에서 온’ 노라노는 당대 상류층의 신여성들처럼 한국 근대문화를 선도하고 창조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계급성은 경제적 계급과 젠더적 계급 혹은 섹슈얼리티 계급간의 다층적인 만남과 갈등을 통해 형성된다. 노라노 역시 부르주아 계급의 규범적 삶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비규범적 삶을 택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자 인생의 최대 실패라 낙인찍히는 이혼을 감행하고 미국행을 택하면서,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노명자가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그녀는 국가나 아버지가 아닌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다고 한다.

물론 이후 노라노에게는 결혼을 청하는 남자들도 꽤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순간마다 자신의 실수가 반복되지는 않을까, 혹은 힘들게 쌓아온 자신의 세계가 다시 가정 안으로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노라노는 혼자이기를 택했지만, 이혼한 여자로서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패션계라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세계에서, 사치스럽고 부도덕한 만만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노라노의 특별한 삶은 여성의 삶을 가로지르는 젠더와 계급의 갈등과 충돌을 보여준다. 그녀의 계급적 특권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를 보호했고, 여성 욕망을 부추기는 새로운 가치와 문화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꾸게 했다. 과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노라노를 보호했던 계급적 특권이란 무엇이며, 그 특권을 쓸모 없게 만든 여성이라는 젠더적 계급은 무엇일까. 규범과 비규범을 넘나들며 살아온 노라노의 근대 경험은 또한 어떠 했을까. 노라노가 지녀왔던 위치들, 계급들을 통해 여성들의 상이한 근대 경험을 접하고자 한다

노년세대를 위한, 세대간 소통을 위한 여성문화의 생산, 여성이 주인공인 또 다른 ‘쎄시봉’ 열풍을 꿈꾼다.

최근 불고 있는 ‘쎄시봉’ 열풍은 손주들의 재롱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노년세대들을 콘서트 장으로 불러모았고, 자신들의 청춘을 흥얼거리게 만들었으며, 그 청춘에 대한 수다를 젊은 세대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를 넘어 6,70년대 대중문화를 ‘발견’하고, 이를 젊은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노라노> 역시 5,60년대 청춘을 보낸 여성들이 함께 즐기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노년세대가 자신들의 문화적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한국 문화시장에서 역사 속 문화 주체였던 다양한 여성들의 기억을 자극하고, 그 기억을 젊은 여성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또한 저물어가는 한 세대의 도전과 실험을, 앞선 세대들이 들려줄 수 있는 삶의 교훈을 영화를 통해 남기고자 한다.

주부, 어머니, 그리고 식모나 여공으로 불렸던 여성 노동자들이 당대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타협하고 갈등하며 도전했던 일상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 젊은 여성들이 살고 있는 지금을 다시금 이야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모든 ‘노라’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김성희 감독은 역사는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누리는 현재는 과거의 소소하지만 켜켜이 쌓인 작은 도전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한국전쟁 이후 1950~70년대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세월에는 서구문화라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사회적으로 요구되었던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고 타협하며 만들어낸 여성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이야기를 85세 패션디자이너 노라노를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노라노는 패션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또 많은 그 시대 여성들은 무엇에 도전하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이야기이자, 그 시대를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노라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 치마’에서 활동 중이며, 2005년 제작된 기지촌 다큐멘터리 <마마상 : Remember Me This Way>에 구성으로 참여 하면서 영상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세 명의 성전환 남자들을 통해 성전환자의 인권을 다룬 <3XFTM> 제작에 조연출로 참여 하였으며, 2009년 종로구에 출마했던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 최현숙의 이야기를 그린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와 2010년 국내 최초 게이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의 구성을 담당했다. <노라노>는 김성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문화 생산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시대를 걸어 온 모든 여성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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