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제보..회유·협박 등 3개월 간 조직적 은폐 시도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 교장을 필두로 한 사건의 가해자와 책임자들은 교직원들의 외면과 법조계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대부분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교단에 섰다.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2011년 제작된 영화 도가니의 줄거리다.

영화 도가니 개봉 후 2년만인 2013년 다시 한번 끔찍한 사건이 세상에 공개됐다.

부산시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수업시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던 교사 박모(32)씨를 목격한 한 여교사가 성고충상담원에게 신고한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교장과 교감 등은 자체적으로 이 일을 마무리했다고 담당 장학관에게 보고해 은폐하려 한 것이 부산시 교육청에 의해 30일 밝혀졌다. 여기에 제보교사에게 입다물 것을 종용하고 피해학생들에게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교사의 신고로 가해교사 박모씨의 성추행이 알려지자 다음날 이 학교의 보건교사는 여학생 4명으로부터 성희롱 고충 신고서를 받아 상담 내용을 학교장과 교감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학교장과 교감은 시 교육청 담당 장학관에게 전화를 걸어 "가해교사가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내부 종결 처리됐다"고 보고해 담당 장학관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이대로 끝나는 듯하던 사건은 지난달 2일 동래경찰서에 성폭력 관련 신고가 접수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성폭력특별수사대는 부산시 교육청과 해당 특수학교에 수사개시를 통보했다.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처음 상담한 보건교사와 가해교사를 차례로 소환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 교사는 2010년 4월부터 지난 7월까지 시각장애 여학생 4명에게 친밀감을 빙자해 몸을 끌어안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지는 등 모두 7차례에 걸쳐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를 찾아 냈다.

시 교육청은 경찰 수사와 별도로 지난 23일 다른 특수학교 교장과 장학사 3명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여 사건이 접수된 지 3개월 만인 지난 24일 가해교사인 박씨를 직위해제 했다.

단편적인 성추행으로 끝날 뻔 했던 사건은 이틀 후인 지난 2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부산시 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특수학교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학교와 시 교육청이 은폐했다는 민주당 안민석 의원을 비롯한 감사위원들의 질타를 받아 시 교육청이 특별감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시 교육청은 지난 28일부터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감사단을 해당학교에 사건에 대한 각종 의혹을 조사했다.

진상조사 결과 학교 측과 가해교사가 이번 성추행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이 드러났고 학생들에게 2차 피해를 준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제보교사에 대한 회유와 협박도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보교사는 지난 7월 19일 성추행 사건 처리와 관련해 교무부장으로부터 질책성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특수학교 교장과 교무부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입장이다. 제보교사는 당시 통화에서 “교육청 장학관과 상의된 내용이기 때문에 조용히 넘어가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또한 가해교사가 지난 8월 16일 보건실에서 보건교사 등과 만나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던지면서 제보교사를 위협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가해교사는 그것도 모자라 지난 8월 피해학생들을 만나 녹취를 하면서 회유하는 등 피해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2차 피해를 3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가해교사는 파면 또는 해임에 해당하는 중징계 대상이 됐고, 교장과 교감은 교내 성폭력을 신고치 않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책임이 밝혀져 징계 대상에 올랐다.

더불어 시 교육청은 지난 29일에 가해교사, 교장, 교감, 담당장학관 및 사건관련자 11명에 대해 징계와 인사조치를 하겠다는 보고서를 국회와 교육부에 보냈다.

현재 피해학생들은 3개월간의 조직적인 은폐에 신체·정신적인 고통을 안은 채 가해교사를 평생동안 보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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