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선택제 일자리 공공부문부터 '흔들'

내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시간선택제를 민간기업으로 확산하겠다는 정부계획이 출발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앞서 주부, 노령층 등 경력 단절자와 일-학업을 병행하는 청년층을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산해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제시한 시간선택제는 청년층에 초점을 맞춘 '신규' 채용이 대부분이다. 전일제 근로자의 절반 수준인 연봉 1천600만원짜리 '반쪽 청년 일자리'만 양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손쉽게 신입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직무분석을 통해 주부 등 경력단절자가 할 수 있는 활용모델을 개발해 민간분야로 파급해야 시간선택제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내년 공공기관 시간제 일자리 어떤게 나오나

내년도 공공기관별 신규채용 계획을 보면 시간제 근로자를 10명 이상 채용하면서 보수와 근로시간 등 채용 계획을 비교적 상세하게 제시한 공공기관은 24곳으로 이중 23곳은 시간제 근로자를 '신규' 채용으로 결정했다.

2014년부터 공공기관은 만 34세 이하의 청년을 매년 정원의 3% 이상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최근 통과된 것도 이런 결정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관별 시간제 근로자 채용 계획을 보면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수력발전 운전관리원, 소방원 등으로 55명을, 한국동서발전은 발전소 교대근무원으로 11명을 뽑는다.

한국서부발전은 수질관리와 폐수처리, 발전설비 운전 등 분야에서 12명, 한국남부발전은 기록물관리원으로 14명, 한국중부발전은 발전소 운전원으로 50명을 각각 채용한다.

한국가스공사는 경비 업무로 22명, 한국전기안전공사는 긴급출동 고충처리 업무로 16명, 한국철도공사는 사무직과 기술직을 합쳐 84명을 각각 채용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업기반시설 유지보수 분야에서 24명을 뽑는다.

복지 관련 공공기관을 보면 국민연금공단이 보험료 지원사업 분야에서 48명을,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관련업무로 16명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회계·홍보 등 행정지원업무로 23명을 각각 뽑는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등 24명을 채용한다.

금융분야에서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서민금융 상담 및 접수 직무에서 10명을, 한국주택금융공사가 U-보금자리론 심사 및 사후관리 업무에서 20명을 뽑는다.

경력직을 채용하는 곳은 IBK기업은행이 유일하다.

기업은행은 과거 은행권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인력을 창구텔러, 사무지원, 전화상담원 등으로 뽑을 예정이다. 하루 4시간 반일제로 일하고 연봉은 1천600만원 수준이다. 정년은 일반 직원처럼 보장받는다.

한국중부발전과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철도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98개 공공기관은 고졸자들에게도 시간제 문호를 개방한다.

◇"시간제 때문에(?)"…고졸 채용은 감소'

지난 이명박 정부는 고학력자와 차별없는 '열린 고용'을 약속하며 고졸 구직자에게 희망을 줬다.

전임 기획재정부 수장인 박재완 전 장관은 작년 11월 공공기관 채용의 20% 이상을 고졸자로 뽑고 비중을 차차 늘려 2016년까지 40%를 채우겠다고 다짐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고졸 적합 직무발굴 및 직무수행이 적은 외국어 등 일부 시험과목 배제, 고졸 인턴경험자의 정규직 채용 확대, 대졸지원자 등 학력 하향 지원자 서류전형 배제, 임금·승진 차별 철폐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정부 정책에 부응해 2012년초 2천218명으로 집계됐던 공공기관의 고졸차 채용계획은 연말 2천508명으로 늘었다.

올해도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인원은 2천512명으로 늘어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1년만에 공공기관의 채용계획은 달라졌다.

295개 공공기관이 최근 기재부에 제출한 내년 채용계획을 보면 고졸 채용인원은 1천933명으로 무려 23%나 감소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정원을 줘서 줄인 것이 아니라 작년에 그쪽(고졸채용 확대)을 너무 의욕적으로 하다보니 이번에 정상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묘하게도 시간제 일자리 신규 창출분과 고졸채용 인원 감소분이 비슷하다.

시간제 일자리 1천27명을 전일제로 환산하면 553명으로 고졸채용 감소인력(579명)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이 정부 정책방향에 따라 고무줄처럼 채용방식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전문가 "시간선택 가능한 일자리 모델 찾아야"

일단 이들 공공기관이 내놓은 시간제는 기본적으로 정규직이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최저임금, 사회보험, 퇴직금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은 일반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이 없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의 보수는 전일제에 견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하면 전일제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근로시간이 짧아 임금이 줄어드는 것이다.

24개 기업이 제시한 시간제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1천618만원으로 전일제(2천890만원)의 56% 수준이다.

고졸 또는 대졸 청년 구직자로서는 '질 좋은 일자리'에 크게 못미친다.

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정착하려면 일자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여건조성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시간선택제가 정착하려면 임금 등에서 차별을 없애고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맞는 새로운 직무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새 직무를 찾기보다는 기존 청년 중심의 일자리를 시간제로 만들려다 보니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일하지 않는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핵심인데 이게 잘 안 되면 일자리가 질 나쁜 '하위(下位)'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시장 인프라나 수용 모델 등을 모두 고려해서 제대로 가야 한다. 공공부분이 리더십을 갖고 시간선택제가 가능한 일자리 모델이나 케이스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기관이 어떤 직무를 어떻게 시간제로 내놓을지, 어떤 대우를 해줄지 검토하는 단계"라며 "공공기관에 대한 컨설팅을 통해 관련 직무 및 대우를 잘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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